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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1> 첫 파리 여행을 회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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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이너 이상봉의 Fashion & Passion] <1> 첫 파리 여행을 회상하다

입력
2009.06.09 2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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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 모든 패션은 1980년대로 통한다. 파리, 밀라노, 뉴욕, 런던의 유명디자이너들이 올 2월 발표한 작품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80년대의 각지고 구조적인 어깨, 과장된 어깨를 선보이고 있다.

또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으로 80년대부터는 다른 시대, 다른 문화로부터 양식과 이미지를 차용하는 방식이 생겼으며 가수 그레이스 존스와 마이클 잭슨 같은 흑인 스타들이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다.

그런데 당시의 슈퍼모델 나오미 캠벨과 린다 에반젤리스타, 클라우디아 쉬퍼가 20년이 훨씬 지난 요즘의 광고모델로 화려하게 부활하고 있다. 이같은 현상은 80년대의 향수가 되살아 남을 방증하고 있다.

당시 패션은 기능적인 면이 아니라 몬타나, 띠에리 뮈글러, 삐에르 가르뎅의 빅룩, 빅실루엣이 유행하면서 우리나라 패션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작년 봄에는 옐로우 칼라를 필두로 비비드한 칼라(선명한 원색계통)가 유행이라 했는데, 우리나라에서도 빅뱅이나 소녀시대 같은 젊은10대 가수들이 사탕과도 같은 알록달록한 비비드 칼라로 무대를 선보이며 80년대의 정취를 부활시키고 있다.

음악도 80년대의 뉴웨이브에서 영향을 받았던 신디사이저 음악이 다시 부활하고 있다. 80년대의 여피들이 클럽에서 즐겨 듣던 ‘블루 먼데이’는 파리 패션쇼장이나 파티에서 단골 아이템으로 흘러나온다.

‘왜 하필 80년대인가’ 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으로 당시의 경제적인 풍요로움이 첫 손가락에 꼽히지 않을까. 혹독한 불황을 맞아 그때를 그리워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수도 있다. 나는 80년대에 한국을 방문했던 삐에르 가르뎅의 기자회견을 학생신분으로 지켜봤던 그때를 기억한다.

이 같은 80년대의 유행은 내가 1985년에 ‘이상봉’이라는 이름의 패션회사를 설립하고 처음으로 프랑스 파리로 외국여행을 했던 그 시기를 회상하게끔 만든다.

첫 여행의 새벽에 만났던 세느강은 새벽 안개를 히잡 삼아 둘러싸고 눈만 아롱거리는 중동의 여인네처럼 아름답고 영롱했다. 그러나 파리 세느강의 정취나 에펠탑의 아름다움 보다 내게 가장 충격으로 다가온 것은 파리 패션숍들의 쇼윈도우에 전시된 칼라풀한 디스플레이였다.

무채색과 검정을 유난히 좋아했던 내게 레드, 옐로우, 그린 등 칼라풀한 색상의 파리 옷들은 나의 잠재된 영혼을 흔들어 일깨웠다.

나는 시간이 아까워 아침을 빵 몇 조각으로 때우고 파리의 골목을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다. 파리 방문 며칠째 되는 날, 기성복 패션 박람회 ‘프레타포르테’ 전시회장을 방문했을 때 평생 처음 보는 색다른 풍경에 나는 아예 눈을 감고 말았다.

다름 아닌 속옷 전시장에서다. 전에는 오직 한 두 개의 브랜드에서 생산된 천편일률적인 속옷만 보아온 나로서는 너무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된 것이다. 파리의 속옷 전시장에서 모델들이 거의 속이 다 보이는 레이스로 된 옷을 입고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남, 여 바이어들이 아주 가까이서 살펴보고 만져봐도 당당한 포즈를 취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지금은 우리나라도 파리의 패션쇼장과 마찬가지로 여자 모델들이 브래지어는 거의 입지 않고 단지 T팬티라는 엉덩이에 끈만 달린 속옷을 입는다. 어떤 모델은 그마저 입지않고 모델의 옷을 입혀주는 헬퍼들 앞에서도 당당하게 옷을 갈아입는다.

난생처음 보는 속이 훤이 비치는 레이스로 된 속옷은 내게 패션에 대해 새로운 눈을 뜨게 했고 문화적인 충격으로 다가왔다.

이러한 경험이 이후의 피렌체 여행 중, 속옷을 입어보고 살수 있는 멀티숍에서 거울에 나의 모습을 직접 비쳐보며 당시 자켓 1벌값이었던 거금 6만원을 주고 속옷을 살 수 있는 용기를 주었다.

이듬해에 나는 ‘프레타포르테’에 내 작품을 출품했고 1997년 중반 동남아 경제 위기와 97년말 IMF구제금융으로 온 나라가를 들썩거릴때 파리 전시회에 재도전, 지금의 이상봉이 만들어졌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파리 ‘프레타포르테’ 컬렉션에 정식으로 일년에 두 번씩 참가하여 홍역처럼 패션쇼를 치른다.

패션쇼를 앞두고는 너무 힘들어 가끔 악몽에서 깨어나곤 하지만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나에게 패션의 꿈을 꾸게 하고 도전하게 만들었던 파리의 그 첫만남을 잊지 않고 추억한다.

한국일보에 칼럼을 기고하면서 어떻게 써야 하나 많은 고민 끝에 처음으로 돌아가자. 내가 디자이너로 지금껏 존재하게 한 파리의 첫 인상을 써보자는 생각을 하게 됐다.

이런 글을 쓸 수 있게 기회를 준 한국일보에 감사하고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느끼고 보았던 내 생각들을 솔직하게 소개할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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