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55년 역사에는 언론자유와 민주화를 위한 처절한 투쟁이 녹아 있다. 군사독재의 암흑 시기 한국일보는 선두에서 언론 탄압에 맞섰다.
유신 초기 침묵의 틀을 처음 깬 것은1974년 10월 25일 본보 기자들의 '민주언론 수호' 결의였다.
발단은 당시 베트남 순회 특파원이던 홍순일 기자가 베트남의 티우 대통령과 단독 인터뷰한 뒤 10월 22일자 '국제 초점'에서 '베트남 정권이 반정부 시위로 곤경에 처해있다고 보도한 것. 제 발이 저린 당국은 발행인과 편집국장을 중앙정보부로 연행했다.
기자들은 이를 명백한 언론자유 침해로 규정, 22일 저녁부터 25일 새벽까지 농성을 벌였고, 논설위원들도 집필을 거부했다.이런 투쟁은 유신 최초의 민주언론 수호 결의문 보도라는 결실을 맺었다.
신군부와 5공 정권의 언론탄압에도 본보 기자들은 꺾이지 않는 자유언론의 정신을 보였다. 80년 5월 14일 계엄사령부의 기사 삭제 요구에 맞서 언론자유와 계엄철폐를 요구하는 성명을 낸 것이다. 결국 그해말 자매지인 서울경제신문이 끝내 강제폐간됐다.
86년 1월 19일에는 '두꺼비 필화 사건'이 벌어졌다. 안의섭 화백이 전두환 대통령의 생일을 '오래오래 사십시오. 하는 짓이 마음에 쏙 듭니다'며 비꼰 것이 국가원수모독으로 간주돼 연행됐다. 기자들은 이틀간 농성을 벌였고, 안 화백은 석방됐다.
이 밖에도 86년 12월 김주언 기자가 월간 <말> 지를 통해 이른바 '보도지침'을 폭로했다가 법정에 섰으며, 88년 10월에는 언론통폐합 조치가 정권에 의한 조직적 저항 세력 제거와 언론 길들이기 조치였음을 입증하는 '건전언론 육성 종합방안 보고' 문건을 특종 발굴해 21회에 걸쳐 보도하기도 했다. 말>
김성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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