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실시된 레바논 총선에서 친 서방 여권그룹이 시아파 무장정파 헤즈볼라가 이끄는 야권그룹을 누르고 승리했다고 AP통신 등이 8일 전했다.
지아드 바루드 내무장관은 이날 개표 결과 여권이 전체 128석 중 과반이 넘는 71석을, 헤즈볼라와 야권 그룹이 57석을 차지했다고 발표했다. 여권그룹 '3ㆍ14동맹'을 이끄는 사드 하리리는 개표 윤곽이 나온 직후 "오늘은 레바논 역사상 가장 위대한 날로 레바논과 자유, 민주주의에 축하를 돌린다"며 승리를 선언했다. 이슬람 수니파인 하리리는 전직 총리인 부친 라피크 하리리의 뒤를 이어 레바논 주권 확립을 슬로건으로 내세워 이란, 시리아의 지원을 받는 헤즈볼라와 야권 그룹의 맹렬한 추격을 따돌렸다.
친서방파의 승리로 헤즈볼라를 후원해온 시리아, 이란 등의 레바논 지원 움직임은 다소 둔화될 전망이다. 그러나 여권그룹이 이미 상당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는 헤즈볼라를 완전히 배제하기는 힘들어 이들과의 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선거 결과 발표 직후 헤즈볼라가 보유한 무기고를 둘러싼 집권 여당과 헤즈볼라 사이의 갈등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정국 불안도 예상된다. 헤즈볼라의 모함메드 라드는 AFP통신에 "집권당이 선거에서 승리했더라도 저항 정당으로서 헤즈볼라의 역할, 무기고의 합법성, 그리고 이스라엘이 우리의 적임을 인정해야 할 것"이라고 강경한 목소리를 냈다.
헤즈볼라의 무기고는 레바논 정국 안정에 있어 가시와 같은 존재다. 2006년 레바논인 1,600명이 사망한 이스라엘과의 전쟁 이후 헤즈볼라는 "이스라엘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무기들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무장해제를 거부하고 있다.
레바논은 18개 종파가 복잡하게 얽힌 모자이크 국가로 불린다. 이번 선거에서는 기독교계 유권자가 결정적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됐다. 기독교계 정당들은 2005년 시리아 주둔군 철수운동을 이끈 '3·14동맹'과 헤즈볼라가 속한 야권그룹 '3ㆍ8동맹(볼록)' 모두에 속해있다. 하지만 온건 기독교도들은 3ㆍ14동맹의 손을 들면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했다.
또한 이슬람권에 화해의 악수를 요청한 오바마 대통령의 연설이 서방에 대한 경계심을 무너뜨린 것도 여권의 승인으로 꼽혔다. 월스트리트저널은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보여준 화해 메시지에 이슬람권이 화답한 결과"라고 분석했다. AP통신은 오바마 대통령이 4일 이집트 카이로대 연설을 통해 전임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달리 '테러리스트'나 '테러리즘'이라는 단어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중동 평화를 강조함으로써 이슬람 대중의 마음을 움직였다고 전했다.
야권그룹이 승리할 경우 이란과 시리아, 레바논으로 이어지는 반달 모양의 반서방 라인이 구축돼 중동평화 협상을 재개하려는 오바마 정부의 정책이 후퇴하고 이스라엘과 중동 지역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었다.
박관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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