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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 한국 대표 석학 총망라 '현대지성의 요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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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 50년/ 한국 대표 석학 총망라 '현대지성의 요람'

입력
2009.06.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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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출판문화상의 반 세기 역사는 이 땅의 현대 지성사와 궤적을 같이 한다. 역대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 수상자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한국의 대표적 석학들이 이 상과 크고 작은 인연을 가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시조시인이자 국문학자인 가람 이병기(1891~1968)는 1961년 <한듕록> 으로 제2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작상을 받았다. 심사위원이었던 철학자 박종홍은 " <한듕록> 은 책의 체제와 내용에 있어서 여러 점으로 잘 생각하여 꾸며졌다. 우리나라의 다른 고전들도 이런 식으로 널리 보급될 수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났다. 고마운 새로운 시도임에 틀림없다"는 심사평을 남겼다.

제3회 저작상은 현대 사학과 국문학에 각각 큰 족적을 남긴 이상백(1904~1966)과 이기문(79)에게 돌아갔다. 이상백은 <한국사: 근세 전기편> 을 통해 정치사 중심이던 역사 서술을 경제ㆍ사회ㆍ문화의 영역으로 넓혔다. 당시 소장 국문학자이던 이기문은 천시되던 속담에서 한국인의 유머와 패러독스를 읽어낸 <속담사전> 을 펴내 문화사의 새로운 영토를 개척했다.

'불놀이'의 시인 주요한(1900~1979)도 제4회 수상자 명단에 들어 있다. 그가 펴낸 <안도산 전서> 는 도산 안창호의 삶과 사상을 기록한 전기다. 심사를 맡았던 안병욱 숭실대 교수는 "도산의 애국사상과 도의적 주장에 치중한 종래의 견해에 대하여, 도산의 민주주의적 이념과 국민생활 현대화의 선결논리를 중시하는 또 하나의 도산관을 보여준다"고 평했다.

한국 현대문학의 1세대 평론가인 백철(1908~1985)은 자신의 문집인 <백철문학전집> 으로 제10회 저작상을 받았다. 1969년 11월 25일자 한국일보에 실린 '한국출판문화상 수상도서 레뷰'라는 제목의 기사는 "60평생을 한국문단에 평론문학 '장르'를 확립한 저자가 회갑 기념으로 엮은 책으로, 근대 한국문학사를 밝혀주는 옥고들이 실려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제14회 저작상은 동양철학의 초석을 놓은 이상은(1905~1976)과 문학평론가 김윤식(73ㆍ명지대 석좌교수)에게 돌아갔다.

이상은의 수상작 <퇴계의 생애와 학문> 은 언로(言路)의 중요성을 강조한 퇴계를 통해, 서양에서 수입된 것으로만 인식되던 언론자유 사상의 고유한 뿌리를 보여주는 책이다. 수상자 인터뷰 기사는 "우리 역사를 제대로 해석하는 일이 시급하다"는 이상은의 목소리를 전하고 있다.

당시 청년의 얼굴이던 김윤식 교수는 <한국근대문예비평사> 로 한국출판문화상을 수상했다. 비평사의 관점에서 한국문학을 서술한 고전적인 책이다. 심사위원이었던 시인 박두진은 "소장학자 김윤식 교수의 책은 방대한 자료와 공적이 쌓인 점이 권장할 만해서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도서에 뽑혔다"고 밝혔다.

형제 수학자 김용운(82), 용국(80) 교수의 <한국수학사> 는 제18회 저작상을 수상했다. 이 책은 수학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인식되던 우리 조상들이 뛰어난 수학 문화를 지니고 있었음을 밝힌 책이다. 김용운 교수는 당시 수상자 인터뷰에서 "400권이 넘는 문헌을 조사하고 보니, 동양의 전통 수학을 마지막까지 지킨 것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과학계의 원로인 물리학자 장회익(71ㆍ서울대 명예교수)은 1990년 <과학과 메타과학> 으로 제31회 저작상을 받았다. 심사위원들은 "과학 자체에 대한 학문(메타과학)을 시도하고 과학을 통해 인간의 정신을 들여다보겠다는 독창적인 연구가 탁월하다"고 선정 경위를 밝혔다. 장 교수는 "시론 정도인데 상을 줘 부담이 크다. 본론을 빨리 만들라는 채찍질로 생각하겠다"고 수상 소감을 얘기했다.

학계의 어른인 영문학자 김우창(72ㆍ고려대 명예교수)의 <정치와 삶의 세계> 는 제41회 수상작이었다. 이 책은 국제 금융자본의 움직임과 사회윤리의 관계 등 IMF사태 이후의 한국사회를 성찰한 역작이다. 김 교수는 "우리는 큰 이상을 위해 너무나 많은 작은 도덕들을 무시해 왔다. 이러한 태도가 정치와 경제 부패의 근본 원인이 아닐까"라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2001년 제42회 수상자 명단에는 보수와 진보 학계의 두 학자가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국가와 권위> 를 쓴 박효종(62ㆍ서울대 교수)은 "국가에 대한 복종은 의무라기보다는 덕목"이라는 시각을 드러낸 책으로 저작상을 받았다. 반면 <이븐 바투타 여행기> 로 번역 부문 출판상을 수상한 정수일(75ㆍ전 단국대 교수)은 수상자 인터뷰에서 "이 책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복역하던) 5년 간 감옥에서 치른 '자신과의 싸움'의 결과물"이라고 밝혔다.

유상호 기자 shy@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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