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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農 손잡고 '상생 장터' 일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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都·農 손잡고 '상생 장터' 일궜다

입력
2009.06.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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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추 싱싱합니꺼?" "두 말 하면 잔소리지예. 김치 담글 때 한 눈 팔면 배추가 살아서 밭으로 도망갑니데이."

4일 오후 8시 대구 북구 동천동의 친환경 농산물 직거래 매장 '농부'. 100㎡ 남짓한 매장 안은 물건을 고르는 손님들과 주인들이 나누는 정겨운 대화로 왁자지껄했다. 주인들이란 매장 이름처럼 이 곳에서 파는 농산물을 손수 재배하는 '농부'들이다.

둘째딸 다민(5)이의 소풍 음식거리를 사러 온 이영아(34)씨가 토마토를 만지작거리자, 마침 이날 '개똥이 토마토'를 트럭에 싣고 온 홍영태(43)씨가 다가가 "오늘 아침에 땄다"고 거들었다. 1주일에 한 번 이곳을 찾는다는 주부 김한순(44)씨는 "생산자가 직접 자신이 수확한 먹을거리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니 한결 믿음이 간다"고 말했다.

농민들과 이웃한 도시 주민들이 합심해 설립한 협동조합형 농산물 직거래 매장이 지역 농산물의 판로를 확보하는 동시에 지역공동체 운동의 불씨 노릇을 톡톡히 하고 있다.

'농부'는 경북 군위ㆍ칠곡ㆍ의성ㆍ고령 등 인근 지역 농민 15명과 대구 북구 주민 등 50여명이 100만∼500만원씩 투자해 지난달 7일 문을 열었다. 공동 주주들은 수시로 매장에 들러 입심을 보태고 일손을 거들며 이날처럼 '손님 반, 주인 반'인 진풍경을 연출한다.

차로 20분 거리의 칠곡군 동명에서 토마토 농사를 하는 홍영태씨는 이날 같은 동네 농부들이 생산한 고춧잎과 호박, 가시오이 등을 한꺼번에 트럭에 싣고 왔다.

조합원인 생산자가 직접 농산물을 매장까지 운반하는 것은 물론, 이웃 농부들끼리 운반 '카 풀'을 운영해 유통 거품을 완전히 뺀 것이다. 홍씨는 "직거래를 많이 했지만 300만원 내고 주주로 참여한 것은 처음"이라면서 "내 가게다 싶으니 하루가 멀다 하고 들르게 된다"고 말했다.

이날 낮에는 고령 영농법인에서 '우곡 수박' 50개를 놓고 갔다. 농산물은 모두 아침에 따서 그날 바로 공급하는 것이 원칙. '농부'가 가까운 지역의 농산물을 고집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유기농에 신선도를 높이고도 유통 마진을 빼니 시중보다 값이 20% 정도 싼 편이다.

품목도 다양하다. 군위 전통된장, 고령농민회 유정란, 도라지청, 통밀 건빵, 쌀 스낵, 현미유, 청죽양봉농원 벌꿀 등 180여 품목 모두 친환경 제품이다. 코주부 엠보싱화장지 겉면에는 '본제품 품질을 보증합니다. 환경운동가 윤명식'이란 글귀와 윤씨의 사진이 찍혀있다.

상주의 박종구(52)씨가 재배하는 느타리버섯은 가져다 놓기 무섭게 동이 난다. 매장 카운터 담당 김기수(48)씨는 "물건이 부족해 손님 서너 명이 9,000원하는 2㎏짜리 버섯을 사서 나눠가기도 한다"고 귀뜸했다.

매장 한 구석에는 의성농민회에서 제공한 '즉석 도정기'도 있다. 쌀을 현미로 보관하다 손님이 원하면 도정을 해준다. 김씨는 "쌀눈 등이 40% 가량 살아있는 '7분도' 영양쌀을 권하는데, 손님들이 즉석 도정을 통해 직거래의 맛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농부'는 소박하지만 야무진 꿈에서 비롯됐다. 지난 연말 대구 칠곡 지역의 주민과 문화단체 회원 등이 송년회에서 주민들이 함께 하는 생활과 문화 공동체를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했다. 이어 결성된 강북우리생활공동체(가칭) 추진모임의 첫 작품이 바로 '농부' 개장이다.

직거래 매장을 도농 협동조합 형태로 열어보자는 제의에 인근 농촌에서 즉각 반응이 왔다. 군위 부계의 외뚜들농장과 참농부식품, 소보의 금수강산농원, 칠곡 동명의 한우물작목반, 팔공산에 있는 한울친환경영농조합법인 등이 동참했다.

군위친환경영농조합 이상조(44) 이사는 "상호를 의논할 때 '마을장터' '우리마을' 등 여러 가지가 나왔는데, 농민들이 직접 주주로 참여했다는 의미를 살리기 위해 '농부'로 정했다"고 전했다.

하지만 출자금 걷는 일이 쉽지 않았다. 강북우리생활공동체 추진모임의 반상호(48) 대표는 "뚜렷한 청사진조차 없을 때 '출자금을 내야 한다'고 하니 당장 '안되면 우짤라카노' 하며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면서 "돌이켜보면 시작이 반이었다"고 말했다.

일단 돈이 걷히자 사업은 날개를 달았다. 도배 하고, 페인트 칠 하고, 판매대 짜는 것까지 매장 꾸미기는 모두 주주들 손으로 했다. 그런 노력 덕에 개장 한 달 남짓한 현재 하루 130여명의 손님들이 '농부'를 찾고 있고, 그 수가 매일 매일 꾸준히 늘고 있다.

매장관리를 맡은 이재기(43)씨는 "아침 아홉시에 문을 열면 가장 먼저 주부들이 찾고, 딸네집 다니러 온 노인, 퇴근길 직장여성에 이어 저녁운동 나온 부부 등 밤 10시 반에 문닫을 때까지 시간대별로 다양한 손님들이 찾는다"고 말했다.

'농부'에선 판매 수익의 10~15%를 매장 운영 수수료로 뗀다. 실제 운영에 드는 돈을 제외하고는 모두 지せ英맙?환원한다는 계획이다. 내달 중순 정식 출범하는 강북우리생활공동체는 농산물 직거래뿐 아니라 육아와 생활, 문화 활동 등까지 아우르는 지역 공동체를 표방한다.

'농부'에서 얻은 수익금, 좋은 먹을거리를 생산해 따뜻한 정과 함께 나누는 공유의 경험은 그 꿈을 힘차게 퍼올리는 '마중물'인 셈이다.

글·사진 대구=전준호 기자 jhj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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