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산율(1.30명ㆍ2001년 기준)이 일본(1.33명)보다 낮아진 것으로 확인된 2002년 3월. 과천 정부청사에서 주요 부처 관계자가 참여한 가운데 출산장려 정책 마련을 위한 대책회의가 열렸다. 그러나 결론은 ‘없던 일로 하자’였다. ‘출산 보조금이나 보육비 지원을 늘려봐야 중산층의 출산율은 높아지지 않고, 보조금을 노린 일부 계층의 악용 가능성만 크다’는 이유에서였다.
그 후 7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저출산의 시계추는 해가 거듭될수록 급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일하는 사람’의 절대 숫자가 감소하는 ‘운명의 해’가 이제 불과 8년 앞으로 다가왔다.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 보건사회연구원 등에 따르면 2009년 생산가능인구(15~64세)는 지난해(3,513만명)보다 24만명 늘어난 3,537만명이지만, 2017년(3,611만명)부터 감소세로 돌아서게 된다. 또 이후 감소폭이 확대돼 2050년에는 현재의 3분의 2 수준인 2,242만명까지 떨어질 전망이다.
8년 뒤부터 ‘일하는 인구’가 감소할 수밖에 없는 것은 2002년 출생자들이 생산가능 연령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70년 4.53명, 80년 2.83명이던 출산율이 2002년에는 1.17명까지 떨어졌는데, 그 여파가 15년이 지난 뒤 노동시장에 영향을 미치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후에도 출산율은 추세적으로 계속 하락해 2019년부터는 아예 대한민국 전체 인구가 줄어든다. 2009년 4,874만명인 인구가 2018년 4,934만명을 정점으로 감소하기 시작해 2050년에는 4,234만명이 된다.
출산율 하락은 2020년부터 한국사회의 활력을 떨어뜨리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생산가능 인구가 1% 늘어나면 1인당 실질 국내총생산(GDP)은 0.08%포인트 증가하지만, 거꾸로 고령인구가 1% 늘어나면 성장률은 0.04% 줄어든다.
보사연이 이 방식에 따라 분석한 결과, 2000년대 5%인 잠재성장률이 2020년에는 3.04%로 떨어지고 2040년에는 1.53%로 주저앉을 전망이다. 당장은 세계 금융위기가 문제이지만, 10년 가량 지나면 저출산이 한국 경제를 위협하는 가장 큰 적이 되는 셈이다.
그렇다면 정부는 제대로 대응을 하고 있는가. 지금까지의 노력과 결과로만 따진다면 ‘늑장ㆍ부실’ 대응이라는 비판을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우선 ‘늑장 대응’. 정부 고위관계자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직후인 90년대 중반 OECD 회의의 핵심 주제는 ‘저출산’ 이었는데, 한국 대표단은 ‘무슨 소리인가’라는 분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일본보다 출산율이 낮아진 2002년에야 심각성을 깨달았다”고 실토했다. 참여정부 시절인 2005년에야 공식 대응이 나왔던 만큼 정부가 OECD 분위기를 빨리 간파했다면 최대 10년, 일본보다 출산율이 내려간 2002년에 즉시 움직였다면 저출산 대책이 최소 3년은 앞서 시작됐을 것이라는 얘기다.
뒤늦은 대책도 그 규모나 내용면에서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정부는 출산율이 2005년 1.08명에서 2006년 1.13명, 2007년 1.26명으로 반짝 상승하자 ‘정책 효과를 보고 있다’고 주장했으나, 2008년(1.19명)에는 하락세로 반전했다. 2년간의 반등은 각각 ‘쌍춘년’과 ‘황금돼지 해’의 효과였을 뿐이며, 저출산 대책과의 관련성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일반 국민의 ‘구성의 오류’에 빠진 행동도 또다른 원인이라는 분석도 있다. 구성의 오류란 개인적으로는 합리적 선택이지만, 그 결과 집단적으로는 실패인 경우를 말한다.
황원일 숭실대 교수는 “한 자녀만 낳고 ‘올인’해서 잘 키우자는 가정이 늘어날수록, 사교육비는 상승하고 입시경쟁은 치열해질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재는 노인 1명을 위해 청년 7명이 세금을 내는 구조이지만, 2050년에는 노인 1명을 위해 청년 1.5명이 세금을 내야 한다”며 “현재의 저출산 구조는 부모 세대의 잘못된 선택에 따른 경제적 고통을 자녀 세대가 떠맡게 되는 구조”라고 덧붙였다.
일부에서는 저출산 현상과 그에 따른 노동력 부족을 해결하는 방법으로 ‘외국 노동력 도입’ 방안을 제시하고 있으나,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한국조세연구원의 관련 보고서에 따르면 출산율을 높이는 노력을 포기한 채, 외국인 이민으로만 노동력 부족을 해결할 경우 2050년에는 국내 인구의 46%인 3,662만명이 외국인 이민자로 채워지게 된다. 조세연구원은 “이들 이민자가 장기 체류할 경우 공적연금 부담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는 연금재정 악화 등의 문제가 우려된다”고 전망했다.
결국 저출산 문제의 해결 방법은 낮아진 출산율을 높이는 것이 최선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견해다. 20대 여성의 출산력을 끌어올리기 위해 결혼 연령이 낮추고, 보육ㆍ교육비 부담을 완화하기 위한 정부 정책과 사회적 대타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선진국의 경험도 출산율 제고가 미래 경쟁력의 핵심 관건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프랑스의 경우 ‘혼외 출산’에 관대한 문화도 한 몫을 했지만, 연간 GDP의 4.7%인 883억 유로(150조원)를 출산ㆍ양육 보조금에 투입하는 등 파격적인 재정지원을 했다. 그 결과, 94년 1.66명이던 출산율이 지난해 2.02명으로 높아졌다.
출산 정책은 프랑스 경제 자체를 강력하게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프랑스 경제는 2차 대전 이후 90년대까지 독일과의 경쟁에서 줄곧 뒤졌으나, 2000년 이후에는 독일을 추월했다. LG경제연구원은 “성공한 출산정책으로 인구 증가세가 유지되면서 프랑스 경제가 건실한 성장을 보이고 있다”고 분석했다.
조철환 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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