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퇴근 자율 '창의력 술술'실패 용납하는 문화, 새 원동력으로
경기 용인시 기흥구 농서동 삼성전자 기흥사업장의 이윤우(사진) 부회장 방에는 그 흔한 소파도 하나 찾아볼 수 없다. 대신 그 자리에 10여명이 앉을 수 있는 탁자가 놓여 있다. 올해 2월 서울 서초동 사옥에서 이곳으로 집무실을 옮기면서 아예 소파는 놓지도 못하게 한 것. 이 부회장은 이곳에서 임원들과 둘러 앉아 현장에서 결정해야 할 경영 현안들을 논의한다.
사실 이곳 기흥사업장은 이 부회장에겐 잊을 수 없는 장소다. 1983년 이곳에 국내 처음 초대규모집적회로(VLSI) 반도체 라인을 건설한 주역이 바로 이 부회장이기 때문이다. 모두 불가능하다며 비웃을 때 그는 현장에 야전 침대를 갖다 놓고 경쟁사가 3년간 건설한 규모의 공장을 단 6개월 만에 완공했다. 진동에 약한 반도체 장비를 들여오기 위해 4시간만에 4㎞의 공장 진입로를 포장한 일화는 유명하다. 기존의 틀을 깨 버리는 사고가 아니면 불가능한 일들이다.
지난해 4분기 9,400억원대의 적자(본사기준)를 기록한 삼성전자가 1분기 흑자 전환의 드라마를 연출할 수 있었던 데에는 이 부회장의 이러한 현장 중시 철학과 창조 경영의 힘이 컸다는 게 자체 평가다. 이 부회장이 구내 식당에서 직원들과 격의 없이 식사하며 자주 대화를 나누는 것도 창조 경영의 일환이다.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창조 경영이 실천으로 옮겨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최근 삼성전자는 이전 삼성전자와는 다른 큰 변화를 실험하고 있다. 가장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 바로 직원들의 근무복장 자율화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0월부터 비즈니스 에티켓에 위배되지 않고, 회사 이미지를 실추시키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비즈니스 캐주얼'을 기본 근무 복장으로 삼았다. 시대 변화의 흐름을 반영하고 직원들의 창의력을 북돋우기 위한 결정이다. 이후 목을 꽉 조인 넥타이가 사라진 삼성은 좀 더 창의력이 숨 쉴 수 있는 일터로 변해가고 있다.
삶의 질 제고 취지에서 출퇴근 시간을 자신이 직접 선택하는 '자율 출퇴근제'도 도입됐다. 스스로 알아서 출퇴근하면서 규정된 근무시간 8시간만 준수하면 된다. 이를 통해 삼성전자는 성과와 업무 중심 문화로의 전환과 함께 자율과 신뢰를 통해 더 나은 삶과 더 높은 성과를 창출하는 일할 맛 나는 일터 만들기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 동안 시간관리 중심의 문화도 성과관리 중심으로 바꾸고 있다. 성과만 낸다면 최대한 임직원의 자율성을 보장해 주겠다는 것이 이 부회장과 삼성 경영진의 생각이다. 이에 따라 보고와 지시 위주던 회의도 토론 중심으로 변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한 직원은 "예전에는 상사가 사실 보고서의 글자 크기와 삐뚤어진 줄 간격을 지적할 정도로 형식이 중요했고, 이런 분위기에서 창의력을 발휘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다"며 "그러나 최근엔 보고서의 형식보단 내용을 중시하는 분위기가 강해지고 있다"고 말했다. 또 도전과 실패를 용납하는 문화가 확산되고, '개방형 기술 혁신'을 뜻하는 '오픈 이노베이션'(Open Innovation)이 강조되고 있는 것도 달라지는 모습이다.
올해 1월 기존의 반도체, LCD, 디지털미디어, 생활가전 등 4개 사업 총괄이 부품과 세트 등 2개 사업 부문으로 통폐합한 것도 임직원의 창의력을 높이려는 조치였다. 전 임원의 3분의 2가 자리를 바꾸며, 본사 인력 1,400명 중 1,200명이 현장으로 전진 배치됐다. 삼성 관계자는 이와 관련 "조직이 커지며 의사 결정의 속도가 나지 못해 시장의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점이 있었다"며 "이번 조직 개편으로 현장 완결형 의사 결정 및 열린 구조로의 전환을 꾀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이젠 '열심히 일하는(Work Hard) 문화' 보단 성과 중심으로 '효과적으로 근무(Work Smart)하는 창조적인 조직 문화'가 필요한 때"라며 "관리의 삼성이 아닌 창조의 삼성을 통해 글로벌 시장을 선도하는 초일류기업으로 거듭날 것"이라고 밝혔다.
박일근 기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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