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12월 10일자 한국일보에는 제4회 한국출판문화상 제작상 부문의 수상작을 발표하는 기사가 실려있다. "전환기에 처한 우리나라 지성대중에게 사색의 양지를 마련하고 있음은 한국인의 정신문화사상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당시 동아일보사 사장이던 이희승 박사가 쓴 심사평이다. 수상자는 <현대인강좌> (전7권)을 펴낸 고 박상연(1923~1993) 박우사 대표였다. 현대인강좌>
45년이 지난 2008년. 이 해 12월 26일자 한국일보에는 소설가 박태순(67)씨가 제49회 한국출판문화상 저술상(교양) 부문 수상자로 결정됐다는 기사가 실렸다.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은 심사평에 "대중 독자에게 어울리는 진정한 교양이라는 이름에 값하는가 등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박태순씨의 <나의 국토 나의 산하> (전3권ㆍ한길사 발행)가 수상작으로 결정됐다"고 썼다. 나의>
박태순씨는 고 박상연 대표의 아들이다. 부자가 45년의 세월을 건너뛰어 한국출판문화상을 나란히 수상한 것이다. 50년이라는, 한국출판문화상이 쌓아온 연륜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그리고 박씨는 또 하나의 진기한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의 리얼리즘 문학을 대표하는 작가의 한 사람인 그는 한국출판문화상을 받기 20년 전인 1988년 장편소설 <밤길의 사람들> 로 제21회 한국일보문학상도 수상했다. 한 명의 작가가 한국일보문학상과 한국출판문화상을 한꺼번에 받는 기록까지 세운 것이다. 밤길의>
박씨는 "올해 초 열린 한국출판문화상 시상식 후 상패를 어머니가 계시는 집에 가져다 놓다가 아버지가 받은 상패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옻칠로 마무리한 검은색 나무에 한자로 '제4회 한국출판문화상'이라고 새겨진 것이었다.
출판사를 경영한 아버지에 대한 박씨의 기억은 "거칠한 말똥종이에 활자가 보일 듯 말 듯한 책을 교열하던 시간" 너머에 있었다. 아르바이트 한다는 심정으로 아버지를 따라 교정을 보다가 얼떨결에 글을 쓰게 됐다는 박씨에게 출판이란 "최고 지식인들과 함께 호흡하는 영광"과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가난"이 늘 함께하는 일이었다.
"한국의 출판 마케팅 역사에서 <현대인강좌> 는 두 가지 의미가 있는 책이에요. 첫째는 이게 전집류의 효시라는 겁니다. 둘째는 세일즈맨에 의한 할부 판매의 효시라는 점이에요. 그런데 결국 이 책 때문에 집안이 많이 어려워졌어요. 책은 인기가 있었지만 할부금은 들어오지 않고, 중간 판매상들은 농간을 부리고…." 현대인강좌>
박우사는 1968년 1,400만원의 빚을 안고 쓰러졌다. 그러나 박씨는 <현대인강좌> 를 내던 때의 간행 취지를 또렷이 기억하고 있었다. 또 당시로는 파격적으로 앵포르맬 회화를 표지 그림으로 쓰는 등 "양서에 대한 집념이 대단했던 아버지의 모습"도 잊지 않고 있었다. 현대인강좌>
"박정희식 근대화가 막 시작되던 시절인데, 현대인으로서 소양을 갖추는 일이 경제개발 못지않게 시급했습니다. <현대인강좌> 는 박종홍, 안병욱 등 당시 최고 지성들이 필진으로 참여한 굉장한 기획이었어요. 특히 7권 '한국의 발견'은 국학의 가치를 최초로 조망한 책이었어요. 아버지는 중학교 중퇴의 학력이었지만, 박종홍 박사를 손아귀에 놓고 부려먹을 정도로 굉장한 독서가였죠." 현대인강좌>
박씨는 1993년부터 충북 충주시 수안보온천 부근에 자택과 집필실을 마련해 생활하고 있다. 본래 건강이 좋지 않던 아버지의 요양을 위해 마련한 공간인데, 아버지는 이곳에서 생활해보지 못하고 별세했다. 박씨는 요즘도 매일같이 글을 쓰고 있다.
"영업에 엄두가 나지 않아 출판사를 경영하지는 못했지만, 좋은 책을 만들려는 아버지의 꿈은 물려받았다고 생각해요. 아들 입장에서, 그리고 책을 만드는 입장에서, 저는 아버지가 자랑스럽습니다."
충주=유상호기자 shy@hk.co.kr
충주=조영호기자 vold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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