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에게 공천은 말 그대로 ‘족쇄’다. 특히나 현재와 같은 공천제도와 방식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여야를 막론하고 “의원들의 발목을 잡는 공천방식은 개선해야 한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공천이 의원들에게 굴레가 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체계적 공천 시스템 없이 사실상 ‘보스 마음대로’ 공천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각 정당이 형식적 제도는 어느 정도 갖춰 놓았지만 실질적 운영은 제멋대로라고 할 수 있다.
한나라당 쇄신특위 공천제도팀 이진복 의원은 “하향식 공천제도가 당의 민주화를 저해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체계적 심사 없는 전략공천이 남발되고, 공천심사 과정이 공개되지 않아 부정ㆍ비리 시비가 끊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난해 18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이런 폐단은 적나라하게 드러났다. 당시 한나라당은 친이, 친박계가 갈등하면서 사실상 계파 대결의 공천이 이뤄졌다. ‘살생부’가 나돌았고, 오로지 계파와 유력자에 대한 줄대기만이 공천의 당락을 좌우했다. 공정한 시스템과 실력에 따른 공천은 없었다.
민주당 역시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상향식 공천은 거의 전무했다. 올해 4ㆍ29 재보선 공천에서도 여야 모두에서 “후보자 공모가 끝나기도 전에 공천자는 이미 윗선에서 내정돼 있었다”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한나라당 중립성향 한 의원은 “18대 총선 공천 때 어느 계파에도 속하지 않으니 기댈 언덕도 없고, 솔직히 불안해 미치겠더라”며 “이제는 어디에라도 줄을 서야 되는 것 아니냐는 두려움이 생겼다”고 털어놓았다.
당연히 이로 인한 부작용은 크다. 의원들이 보스의 눈치를 보게 된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주요 정책 결정 과정에서 소신을 말하기보다 거수기 노릇을 할 때가 많은 것은 모두 공천이라는 족쇄 때문이다. 공천에서 불이익을 받을까 봐 실력자나 당 지도부의 눈밖에 나기가 두려운 것이다. 계파 보스에 줄 서고 충성하는 계파정치가 심해지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철희 한국사회여론연구소 수석애널리스트는 “공천제도가 수시로 바뀌며 합리적으로 시스템화화지 못했기 때문에 당내 유력자들이 개입해 마음대로 하는 폐단이 생기는 것”이라며 “공천의 객관성과 투명성을 높이는 합의된 시스템이 뿌리내리도록 하는 것이 의원들의 공천 족쇄를 풀어 주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정녹용 기자 ltre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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