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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이 미래 없다/ 기혼여성 4명 '이유있는' 출산기피 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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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 없이 미래 없다/ 기혼여성 4명 '이유있는' 출산기피 좌담

입력
2009.06.08 23: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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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다들 아이 낳기를 꺼릴까’라는 질문에 초면의 서먹함은 금세 걷혔다. 출산율 1.19명, 세계 최저 출산 국가에서 결혼과 출산, 육아의 경험을 함께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진솔하고 활기찬 대화가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한국일보 회의실에 모인 20,30대 기혼여성 4명은 아이 낳기를 권하면서도 주저하게 만드는 우리사회의 현실을 날카롭게 지적했다.

연년생 두 아들을 둔 김은희(26ㆍ주부)씨와 생후 5개월 된 아이를 둔 이현주(33ㆍ주부)씨는 사교육비 등 무거운 양육비 부담을, 임신부인 강효주(29ㆍ간호사)씨와 출산을 계획하고 있는 김희수(33ㆍ회사원)씨는 보육 지원 제도 및 인프라 미비를 저출산의 핵심 요인으로 꼽았다.

‘슈퍼맘’을 강요하는 사회

강효주= 임신 6개월째인데 육아 대책이 안서서 걱정이에요. 직장 때문에 아이를 맡겨야 하는데 친정과 시댁 모두 여건이 안되거든요. 갓난아이를 받아주는 어린이집이 있긴 한데 마음이 안 놓이고…. 친구가 출산 휴가 끝나자마자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겼는데 애가 자주 아파 마음고생 하더니 결국 둘째 낳고 직장을 관두더라고요.

김희수= 아이는 낳겠지만 선뜻 결심이 안서요. 맞벌이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데 여성이 직장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잖아요. 당장 정시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어디 말처럼 쉽나요. 공공 영역의 보육 인프라가 부족한 상황에서 믿을 만한 보육시설을 찾아야 하고, 아이들 크면 교육 문제까지 챙겨야 할 텐데 ‘슈퍼맘’이 되지 않고서야….

강효주= 동료 간호사의 다섯 살짜리 아이가 엄마 일터에 자주 오는데요, 어린이집은 끝나서 봐줄 사람은 없는데 엄마 퇴근이 늦어지니까 병원으로 오는 거예요. 엄마는 바쁘고 애가 있을 만한 마땅한 공간은 없고, 저게 나중 내 모습이구나 싶어요(웃음).

김은희= 첫 애를 가진 채 회사 다니다가 그만뒀어요. 비정규 계약직이라 출산ㆍ육아 휴가가 없는 데다 배가 부를수록 눈치가 보이더라고요. 한번 그만두면 아이 엄마가 재취업하는 것은 ‘하늘의 별 따기’라 망설였지만 어쩔 수 없었어요. 여성 취업자 상당수가 비정규직이라는데 출산ㆍ육아에 있어 정규직과 같은 혜택을 줬으면 좋겠어요.

김희수= 아이 하나와 둘은 또 달라요. 회사 내 기혼 여성 중 애가 하나인 사람은 제법 많은데, 둘을 가진 사람은 3명뿐이에요. 육아 부담이 느니까 다들 회사를 그만두거든요. 두 아이를 키우는 엄마들은 회사, 직장 둘 다 챙기느라 하루하루가 전쟁이에요. 업무에 전념할 수 없는 상황이다보니 회사 내 입지가 좁아지고요. 세 사람 모두 팀장 이상 중간 간부급 연차인데도 직함만 있지 마땅한 직책을 못 맡는 형편이에요.

“차라리 아이 하나에 집중하자”

이현주= 둘을 낳고 싶은 엄마도 넉넉한 형편이 아니면 차라리 하나에게 집중하는 편이 낫다고들 여겨요. 젊은 엄마들과 인터넷 모임을 하고 있는데, 아이가 하나면 고급 상품을 아낌없이 사줍니다. 저도 최근에 회원들과 유아용품 전시회에 갔다가 큰 맘 먹고 70만 원짜리 유모차를 샀어요. 내심 으쓱했는데, 다른 엄마는 150만원짜리 ‘스토케’ 유모차를 샀더라요! 우리 아이 것이 그랜저급이라면 스토케는 벤츠급이에요(웃음).

김은희= 아이를 ‘럭셔리’하게 키우려는 엄마들 심리에 편승해서 아이 용품에 가격 거품이 심해요. 둘 이상 키우는 가정에겐 경제적 부담이 커요. 첫째를 낳았을 땐 백화점 옷을 사다가 입혔는데, 재작년 둘째를 낳곤 새 옷을 거의 사주지 못하고 있어요. 둘다 아들이라 다행히 물려입히곤 있지만요.

이현주= 아이 기를 여건은 안 좋은데 엄마들 눈높이는 계속 올라가죠. 주변에 시어머니나 친정에 아기를 못 맡기겠다는 사람이 꽤 많아요. 예를 들면 나이든 분들은 이유식을 일찍부터 먹여야 아이가 튼튼해진다고 하는데, 젊은 엄마들은 아토피 위험이 높아진다며 기겁을 하죠. 인터넷과 책에서 보고 익힌 것이 많다보니 전통적 육아 방식이 성에 안차는 겁니다.

강효주= 다들 태교의 중요성을 강조하는데 직장에서 일하다보면 가끔 심한 스트레스를 받아요. 동료들은 뱃속 아이를 생각해서 기분을 가라앉히라고 하고, 저도 은근히 아기에게 영향이 갈까 싶어 걱정되고요.

김희수= 저도 두 아이를 둔 친구에게 들었는데 첫째는 편한 업무를 맡았을 때 낳아서 온순한데, 둘째는 회사 합병 등으로 스트레스가 심했을 때 낳아서 그런지 고집이 세다네요. 회사일을 하면서 태교도 잘해야 하니, 막막한 기분이 드는 게 사실이죠.

이현주= 결혼 연령이 늦어지니까 아기 못 낳는 것도 있어요. 저도 올해 초 꽤 늦은 나이에 출산했는데, 조리원에 갔더니 30대 후반부터 40대 산모들이 많아서 깜짝 놀랐어요. 대부분 둘째를 낳은 분들이었지만 초산도 있더라고요.

중산층도 감당못할 양육비

김은희= 뭐니뭐니 해도 사교육비가 출산의 가장 큰 적이죠. 큰 애가 내년에 유치원에 가는데 사립유치원을 보내려면 한 달에 100만원이 들어요. 재료비는 빼고요. 욕심 부려서 영어유치원 보내려면 얼마인 줄 아세요. 140만~150만원이에요. 여기에 학습지 교육도 시키는 게 보통이고요. 요즘은 조기교육이 대세라 어린이집 다닐 때도 영어, 수학 공부를 따로 시켜요. 남편 혼자 버니까 넉넉하진 않지만 우리 아이 혼자 뒤쳐질까 봐 안 할 수도 없어요.

이현주= 결혼하면 전업주부로 살려고 결혼도 늦춰가며 직장에 다녔어요. 서울 시내 15평짜리 아파트에 신혼집을 마련했을 땐 뿌듯했죠. 이제부터 육아와 살림에 전념하면 되겠거니 했는데 아이한테 들어갈 돈 따져보니 그게 아니더라고요. 아무래도 다섯 살까지만 키우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 싶어요. 친언니는 결혼 5년차인데 최근에 애 낳길 포기했어요. 여유 있게 사는 언니 부부를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김희수= 너무 극성맞게 아이를 기르는 엄마들이 분위기를 주도해나가는 것 같아 걱정돼요. 실력만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각박한 분위기도 여기서 비롯되는 것 같습니다. 우리 어릴 때 과외 교육이라곤 피아노, 주산 정도가 전부였지만, 그래도 다들 건실하게 컸잖아요?

김은희= 정부 출산ㆍ양육 지원책도 문제예요. 지원대상을 선정하는 소득 기준이 지나치게 낮아요. 예컨대 차상위계층(월평균소득 159만원 이하)부터 유치원 교육비가 무료인데, 이러면 남편 혼자 돈을 버는 가정도 웬만해선 혜택을 못 받아요. 둘째, 셋째 낳으면 지방자치단체에서 출산 장려금을 준다지만 액수도 적고 일회용 지원이라 별 도움이 안됩니다.

이현주= 맞벌이하면 소득이 많아져서 정부 지원 대상에서 빠지잖아요. 육아에 전념할 형편이 안돼 맞벌이하는 건데, 불합리한 것 같아요.

강효주= 자영업자 중에선 지원 대상이 아닌데도 소득이 적은 것처럼 속여 보조금을 받는다고 하데요. ‘유리지갑’인 급여소득자가 역차별을 받는 셈이죠.

김희수= 개인적으론 아이를 둘 이상 낳을 여력이 되는 중산층에까지 지원을 늘리는 편이 현실적인 저출산 대책이라고 봅니다.

사회 전체가 아이 함께 길러야

강효주=제가 일하는 병원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는데 지원자가 많아 기회가 잘 돌아오지 않아요. 정부나 회사에서 직장 내 어린이집 시설을 마련해주는 것만큼 좋은 지원책은 없을 것 같습니다.

김희수= 그런데 사람마다 선호하는 지원 방법이 다르더라고요. 최근 우리 회사에서 보육지원을 현금으로 할지, 어린이집 설치로 할지를 놓고 설문조사를 했더니 다수가 현금 지원을 선택했습니다. 아무래도 부모님이 아이를 봐주는 사람이 많으니까요. 돈으로 받아 아이를 더 좋은 보육시설로 보내려는 사람도 있고요.

이현주= 아기 엄마가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큰 맘 먹어야 해요. 한번은 가까운 거리다 싶어 아이를 데리고 노량진에서 명동까지 버스를 탔다가 차 안 갖고 나온 걸 내내 후회했어요. 한국에 자가용 수가 급증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걸요?

강효주= 저도 장롱면허 소지자인데 남편한테 다시 운전을 배우려고요(웃음).

김은희= 유모차를 끌고 다녀도 대중교통을 편하게 탈 수 있게끔 배려를 해줬으면 합니다. 모유 수유하는 엄마들이 많아지는데도 지하철역 등에 공공 수유시설도 너무 부족하고요.

이현주= 가부장적 문화는 어떻고요. 아이가 아파 큰 병원에 데려가려고 남편에게 휴가를 내라고 몇 번 부탁했거든요. 여자 팀장일 때는 많이 배려를 해줬어요. 그런데 최근 바뀐 남자 팀장은 “애가 아픈데 왜 아빠가 병원에 가느냐”고 싫은 티를 낸다고 하더라고요.

김희수= 고등학교 때부터 ‘예비 아빠’ 교육을 해야 해요. 육아 기술을 가르친다기보단 부부가 공동 육아 책임자라고 마인드를 심어줘야 할 것 같아요. 사실 일하다보면 남자들에게 연민이 들긴 해요. 평일엔 직장에서 힘들게 일하고 주말엔 아내가 떠맡기는 아이와 놀아줘야 하고…(웃음).

정리= 이훈성 기자 hs0213@hk.co.kr

김성환 기자 bluebir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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