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이성보다는 감성이 더 우세한 때인 것 같다. 노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났지만 여파가 가시지 않는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다. 그를 탐탁하게 여기지 않던 이들도 정신적 외상에 시달리기는 마찬가지다. 노 전 대통령은 '누구도 원망하지 마라'고 했지만, 원망은 걷잡을 수 없이 피어 올랐다. 화합이 고인의 뜻이라고 했지만 반목과 갈등이 더 두드러졌다.
대담한 국정 쇄신 서둘러야
장례 뒤 우리사회는 매우 분열된 모습이다. 4년 만에 당 지지율이 추월 당하는 위기를 맞은 한나라당은 거의 내홍에 가까운 알력을 겪으며 당 쇄신에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은 수용 가능성이 희박한 요구조건을 내걸고 장외투쟁도 불사하겠다며 '조문 민심'을 살려 나갈 길을 찾느라 여념이 없다.
대학가도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이어지는 가운데 다양한 논란이 벌어지고 있다. 민주주의 위기론에 공감하지 않는 교수들이 훨씬 더 많지만, 사태에 대한 정부의 책임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민심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그러나 청와대는 북한의 2차 핵실험 등 잇단 도발행위에 따른 안보위기에 대처하는 것이 급선무라며 민심을 진정시킬 별다른 움직임이 없다.
청와대의 신중한 자세를 무작정 탓할 수는 없다. 민심을 위무하기 위해 노심초사, 예를 갖춰 성대한 국민장을 치른 것은 올바른 정치적 판단이었다. 그 성의를 그대로 평가해야 한다. 또 급박하게 돌아가는 한반도 안보 상황에 대처해야 하는 상황에서 한층 적극적으로 민심 안정에 나설 겨를이 없었던 사정을 헤아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제 더 이상 조문 민심이 가라앉기만 기다리며 관망할 여유는 없다고 본다.
정부가 할 일은 크게 세 갈래로 나눠 살필 수 있다. 첫째, 상처 입은 민심을 어떤 형태로든 추스르는 대담한 조처가 필요하다. 평소 노무현 식 정치에 동의하지 않던 사람들조차 그 가치와 진정성을 이야기하는 까닭은 현 정부가 보여주지 못한 부분에 대한 불만을 반영한다.
국정운영 전반을 점검, 불찰이나 부족한 점을 솔직히 반성하고 대안을 찾아야 한다. 이미 여러 기회에 애도의 뜻을 밝혔으니 굳이 사과까지 갈 것은 없다. 국민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수준에서 유감의 뜻을 밝히고 향후 국정운영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 특히 밀어붙이기 국정운영과 부유층 중심 정책, 편파인사 문제에 반감을 지닌 사람들이 많다. 신문방송 겸영 등 주요 정책현안에도 부정적 평가가 우세한 사실에 유의해야 한다.
둘째, 인사개편 문제이다. 조각 수준의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여당에서도 나온다. 고작 사람을 바꾸라는 요구가 답답하기는 하다. 그러나 국정을 쇄신하고 분열된 국론을 화합으로 이끌려면 일정한 범위의 개각이 필요하다는 데 공감하는 여론이 많은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셋째는 제도개선 문제이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다시 검찰개혁론이 고개를 들었다. 특히 중수부 폐지 주장이 많다. 그러나 권력 비리를 척결하기 위한 중수부를 폐지하자는 주장은 이번 사건의 근원이 권력주변 비리라는 사실을 망각하거나 곡해한 것이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과 공직부패 수사기능을 근본적으로 재검토하여 대안을 찾아가는 것이 올바른 순서다.
야당도 국민의 '내공'바로 봐야
유례없는 전직 대통령의 비극적 선택에 따른 후폭풍이 거세지만, 우리 국민은 곧 평정심을 되찾을 것이다. 지지도가 역전되어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한나라당이 안쓰럽다. 그러나 한때 '노무현' 이름 석 자를 지우려 안간 힘을 쓰던 민주당이 '노무현 가치'를 외치며 장외로 뛰쳐나가는 모습이 딱하기는 매한가지다.
정부와 여야 정치세력은 민심이 쉽사리 감성에 휩쓸리는 듯 하지만 결국 세상 이치를 정확히 꿰뚫어 본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대한민국 국민 노릇하기가 어디 그리 쉬웠던가. 민주화 이십년에 쌓은 우리 국민의 내공은 그리 만만한 게 아니다.
홍준형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저작권자 ⓒ 인터넷한국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저작권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