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0~60년대 영화 '황진이'와 '천하일색 양귀비' 등서 관능적인 연기로 인기를 모은 원로배우 도금봉(본명 정옥순·사진)이 3일 별세한 것으로 5일 뒤늦게 알려졌다. 향년 76세.
서울의 한 복지시설에서 생활하던 도씨는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임종을 앞두고 외부에 소식을 알리지 말라고 한 것으로 전해졌다.
1933년 인천 출생으로 만주 광명여고를 졸업한 고인은 악극단 '창공'에서 '지일화'라는 예명으로 이름을 떨친 후 조긍하 감독의 '황진이'로 충무로에 첫발을 내디뎠다. 고인은 이후 국내 배우로서는 처음으로 대만에 진출하는 등 500여 작품에 출연하며 60년대 한국영화 전성기의 중심부를 관통했다.
고인은 데뷔작 '황진이'의 영향 등으로 '세기의 요우(妖優)'라 불리며 육체파 배우로서 명성을 떨쳤다. 남자들과의 염문으로 화제에 오르기도 했던 고인은 선정적인 뉴스나 세간의 시선에 대해선 공격적으로 맞서 당당한 여배우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 시키기도 했다.
그러나 고인은 육체파 배우라는 일반적 평가와 달리 심청과 유관순 열사 등의 역할도 소화, 연기파 배우로서의 면모도 과시했다. '유관순'과 '대심청전', '새댁', '또순이' 등이 그 대표적인 작품이다. 고인은 97년 박찬욱 감독의 '삼인조'에 전당포 노인으로 출연한 후 연기활동을 중단했다. '새댁'으로 제2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주연상(1963), '작은 꿈이 꽃필 때'로 제11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1972), '토지'로 제13회 대종상영화제 여우조연상(1974) 등을 수상했다.
예명 도금봉은 영화계 데뷔 당시 황진이가 살았던 개성의 옛이름인 송도의 도(都), 황진이가 즐기던 가야금의 금(琴), 그리고 영화계의 봉우리가 되라는 뜻의 봉(峰)을 따 지은 것이다. 빈소는 건국대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6일 오전 5시. (02)2030-7900
라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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