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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별일 없이 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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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론] '별일 없이 살기'

입력
2009.06.08 0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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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디밴드'장기하와 얼굴들'의 <별일 없이 산다> 라는 노래가 인기다. 노랫말 중에 우리의 허를 찌르는 구절이 나온다. '니가 깜짝 놀랄만한 얘기를 들려주마/아마 절대로 기쁘게 듣지는 못 할거다/ 뭐냐 하면/ 나는 별일 없이 산다'

소위 문화라는 인간 진화의 산물은 언제나 시대를 반영하며 성장해왔다. 이 노래가 인기를 끄는 것은 결론적으로 별일이 많이 벌어지는 우리의 현실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사회와 개인의 아노미(anomie)

공전의 히트를 기록한 손담비의 <미쳤어> 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해 볼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연일 뉴스에서는 바이러스처럼 번지고 있다는 집단자살을 신속한 속도로, 구체적 방법과 장소까지 언급하며 관련기사를 스스로 확대 재생산하고 있다. 아무런 대안이 마련되지 않은 상태에서 변죽만 울리는 무분별한 자살 관련보도는 급기야 인터넷을 주범으로 내몰았다. 자살''자살방법' 등의 용어를 인터넷 상에서 쓰지 못하도록 한다는 1970년대 방식의 대응에 이르게 되었다.

과거에 그랬듯 수학여행 도중 사망 사고가 나면 그 다음해 전국 모든 학교의 수학여행을 금지하는 원천봉쇄 방식을 떠올리게 한다. 그 같은 발상으로 법을 추진한다면, 없애야 할 단어에'살인''낙태''무질서''촛불시위'등의 무수한 단어는 왜 포함시키지 않는 것인가.

이 시대를 여러 학자들은 그들의 언어로 규정하고 있다. 대동소이하지만 자살 관련용어로 표현하자면 거대한 아노미(anomie)현상이 우리사회를 뒤덮고 있다. 브리태니커 사전은 그것을'가치관이 붕괴되고 목적의식이나 이상이 상실됨에 따라 사회나 개인에게 나타나는 불안정 상태'로 정의한다.

20세기 초반 에밀 뒤르켐에 의해 제기된 이 용어의 근원을 로버트 머튼은 사회 구성원들의 문화적 목적 달성을 위한 정당한 방법이 갖추어지지 않은 때문으로 분석한다. 따라서 88만원 세대, 중년 실직을 경험하는 사오정 세대, 경제적 자립의 여지가 없는 노인세대 등에 자살이라는 사회조정 능력상실의 결과가 밀어닥치는 것이다. 아울러 충분히 개인화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은 인간 욕망의 불안감에 떨고 있는 개인들이 모여 자살을 감행한다.

지금이라도 자살예방을 위해 국가가 나서서 해야 할 일은 매우 명확하다. 사회 안전망을 더욱 견고하게 재구성하는 것이 첫 번째 과제이다. 축소된 복지예산을 과거 어느 때 보다 더 많이 지출해야 하며, 구조조정을 통한 기업의 생산성 향상이라는 허구적 목적보다는 사회적 일자리 창출에 국가재정 지출을 더 늘려야 한다. 일제고사 실시하는 비용으로 학생들의 미래 불안을 덜어줄 수 있는 구체적인 상담프로그램을 더 양성해야 한다.

인간이 자살에 이르는 과정에는 수많은 원인이 작용하지만, 가장 큰 원인은 익숙한 환경의 파괴가 급속하게 진행할 때다. 여기서 환경은 물리적이면서도 심리적인 환경을 의미한다. 자살은 결코 나약한 인간 개인의 문제로 규정할 수 없다. 부싯돌을 쓰던 원시시대부터 있었으며 앞으로도 있을 사회적 현상의 하나로 분석되어야 한다. 한갓 인터넷 사이트가 자살을 부추긴다는 것은 인간 존재의 존엄성을 망각한 진단이다.

튼튼한 사회 안전망 구축을

엄연히 말한다면, 매일 살벌하게 일어나는 별일들이 계속 개인의 삶의 가치관을 상실하게 하고, 미래에 대한 심각한 불안감이 늘어나고, 사회 안전망마저 기능하지 못한다고 느낄 때, 개인은 얼마든지 충동적으로 자살에 이를 수 있다.

결국 자살 예방을 위해 국가가 할 일은 국민들이 별일 없이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다. 별일 없이 산다는 것이 우리사회에서는 어처구니 없게도 참으로 힘든 일임에 틀림없다.

이영문 아주대 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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