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진, 이화정 지음/씨네21북스 발행ㆍ216쪽ㆍ1만2,000원
너무 친숙해 더 이상 시신경을 자극하지 않는 서글픈 풍경을 일상이라 부른다. 가끔 이 일상에 틈입한 이방인의 목소리를 듣는 일은, 그래서 퍽 고마운 일이다. 권태의 공간도 낯설게 바라보면 시크(chic)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책은 그윽하게, 때론 빼뚜름하게 서울을 바라보는 일곱 이방인의 시선을 담은 인터뷰집이다. 인터뷰를 진행한 저자는 미술관 큐레이터와 영화전문지 기자. 이방인들의 눈을 통해 들여다보는 서울은 "누구나 안다고 생각하지만, 아무도 몰랐던" 모습이다.
말레이시아, 코트디부아르, 미국, 일본, 독일 등 인터뷰이의 출신은 다양하다. 하는 일도 마찬가지. 각각 작가, 만딩고 댄서, 영화인, 대학교수, 미술가 등이다. 떡볶이, 멸치, 자갈매트, 노래방, 싸이월드, 이태리타월, 고갈비집, 낙원동 순댓국집, 연신내시장… 숨 쉬는 공기나 수돗물처럼 그저 심드렁하게 존재하던 것들이, 이방인들의 눈빛을 통해 '서울만의 오브제'로 다시 태어난다.
멜랑콜리한 뉴요커 로버트 프리먼의 말을 들어보자. "전 서울에 백오십 개가 넘는 스타벅스가 있다고 해서 마음 놓고 왔어요. 비 오는 날 스타벅스에 앉아 루이 암스트롱을 듣고, 커피를 마시고, 책을 읽으면 그냥 맨해튼에 있는 것 같아요… 시장엔 생선들이 널려 있고, 그 사이로 물들이 떨어지고, 좀 지저분하다는 생각도 들지만 그런 장면을 굉장히 즐기고 있어요."
그러나 3년차 원어민 영어교사인 그의 눈에 한국은 이런 곳이기도 하다. "파티에 간 적이 있는데 외국인은 나와 파키스탄인 하나, 이렇게 둘뿐이었어요. 나에겐 모두 관심이 많은데 파키스탄 사람에게는 아무도 말을 걸지 않았죠. 한국은 나 같은 백인이 살기엔 편한 나라 같아요."(27쪽)
멋진 카페가 줄지은 신사동 가로수길과 지저분한 좌판이 걸음을 방해하는 종로. 이방인의 눈에 어느 쪽이 더 트렌디할까. 말레이시아에서 온 아티스트 에밀 고의 얘기다. "동대문에서 종로까지 이어지는 거리는 정말 놀라운 곳이에요. 길거리에 쌓아놓고 파는 병만 보더라도 그 자체가 훌륭한 작품 같아요. 자갈매트는 보기에도 예쁘지만 이 조그만 매트 안에 한의학의 원리가 다 들어있는 획기적인 상품이에요."(56쪽)
유상호 기자 shy@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