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고의 현대미술 축제인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올림픽으로도 불린다. 조선소로 쓰이던 아르세날레에서 열리는 본 전시와 별도로, 세계 각국이 대표 작가들을 내보내는 국가관이 자르디니 공원에서 운영되기 때문이다.
그런 행사인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1995년 처음 만들어진 한국관은 늘 아쉬움이 있었다. 독일관과 일본관 사이의 후미진 곳에 위치한데다, 규모는 작고 형태는 복잡하고 무엇보다 유리 외벽 때문에 빛이 많이 들어 전시에 어려움이 컸기 때문이다.
제53회 베니스 비엔날레(7일~11월 22일)가 공식 개막을 사흘 앞두고 4일(현지시간) 언론 공개를 통해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과 독일을 오가며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설치미술가 양혜규(38)씨가 혼자 꾸민 한국관의 풍경은 예년과는 달랐다.
'응결'이라는 제목으로 설치 2점과 영상물 1점을 선보인 양씨는 한국관 건물의 약점이었던 빛을 차단하는 대신, 적극적으로 끌어안는 쪽을 택했다.
전시장 중앙에 놓인 '목소리와 바람'은 조명과 블라인드를 이용한 양씨의 작업 '일련의 다치기 쉬운 배열' 시리즈의 하나다. 그는 이번에는 인공 조명을 사용하는 대신 유리 외벽에서 들어오는, 시시각각 달라지는 빛을 작품 속으로 가져왔다.
색색의 블라인드 사이를 통과한 자연광이 전시장을 메우는 가운데, 여섯 대의 선풍기에서 나오는 바람, 향 분사기가 뿜어내는 냄새가 관람객의 감각을 자극한다.
공간의 한계를 작품의 일부로 만든 양씨는 "공간을 새롭게 만드는 것보다 그 공간을 관계짓는 데는 관심이 많다"며 "전시장의 벽 하나 바꾸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담아내고자 했다"고 말했다.
영상물 '쌍과 반쪽-이름없는 이웃들과의 사건들'은 좀더 사적인 공간에 대한 이야기다. 작가가 살았던, 이제는 재개발로 철거된 서울 아현동의 모습과, 비엔날레가 끝난 뒤 노숙자들이 찾아드는 황량한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의 모습을 교차해 담은 1시간 15분짜리 영상이다. 영상에는 영어와 이탈리아어, 한국어 내레이션이 차례로 흘러나온다.
양씨는 "음성과 이미지를 어울리게 하되 하나의 시간대에 묶지는 않으려 했다. 어떤 순간에 전시장을 찾느냐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듣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옆 공간에 놓인 조각 '살림'은 양씨가 베를린에 있는 자신의 집 부엌을 추상적으로 재현한 작품이다.
뉴욕 뉴뮤지엄 큐레이터인 주은지(40)씨가 커미셔너를 맡아 양혜규씨와 호흡을 맞춘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한국관은 그처럼 공간과 작품의 조화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어느 때보다 해외 미술계 인사들의 발걸음이 잦다.
도쿄현대미술관 학예실장 유코 하세가와는 "여러 감각과 개인의 기억을 효과적으로 구성해 미적 완성도와 관객의 공감을 모두 충족시킨 흥미로운 전시"라고 평했다.
양씨는 한국관 외에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 총감독 다니엘 번바움이 기획한 본 전시 '세상 만들기'의 참여작가로도 선정돼 7점으로 이뤄진 '광원(光源)조각'을 출품했다.
이 작품은 전시 시작과 동시에 미국 카네기미술관에 판매됐으며, 오스트리아의 브뢰겐미술관은 양씨에게 내년에 개인전을 열자고 제의해왔다. 현지 반응이 워낙 좋다 보니 양혜규씨의 특별상 수상을 예상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베니스=글·사진 김지원기자 eddi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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