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렵게 손길을 내밀었지만 (중동의) 반응은 예상보다 따뜻하지 않았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4일 이집트 카이로대학에서 행한 역사적인 연설에 대해 BBC방송은 이렇게 평했다.
6,000개 단어로 짜여진 55분간의 연설은 아랍권은 물론 전 세계에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환영과 비난, 열광과 냉소, 기대와 실망이 교차했다.
뉴욕타임스는 5일 오바마 대통령의 이슬람 존중 태도와 첨예한 갈등 상황에 대한 솔직한 진술 등이 중동사람들에게 높은 평점을 받았다고 보도했다. 요르단 대학 전략연구센터 책임자 무스타파 하마네이는 "오바마는 외국인이 아니라 깨어있는 중동지도자처럼 연설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 내 앙숙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으려 노력할수록 양쪽 모두로부터 분노를 샀다. 이스라엘 우파 정치가는 "유대인 대량학살과 팔레스타인 실향민을 동급으로 비교했다"며 분통을 터뜨렸고 가자지구의 하마스 지도자들은 "팔레스타인 실향민들이 귀향 권리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고 섭섭해 했다.
미군 점령 하의 이라크에서는 연설을 아예 외면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모술의 한 식당에서 한 손님이 TV채널을 오바마 연설로 돌리려 하자, 다른 손님들이 고함을 지르며 제지하기도 했다. 이라크 변호사인 알라 사힙 압둘라는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행동"이라며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레바논 무장조직 헤즈볼라는 오바마의 연설을 보지 않았다며 논평을 내지 않았다. 다만 이란은 오바마가 1953년 친미 쿠데타에 미국정부가 개입했음을 솔직히 인정한 점을 평가했다.
미국 내 반응도 엇갈렸다. 민주당 소속 존 케리 상원 외교위원장은 "연설은 미국과 이슬람 문화 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서방과 무슬림 세계에 우리 책임을 다시 일깨웠다"고 추켜세웠다. 반면 공화당 존 베이너 하원 원내대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을 똑같이 비난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우려했다. 하버드대 스티븐 M. 월트 국제학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오만함을 드러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완전히 미국의 오만함을 지우지는 못했다"며 이번 연설에 대해 'A-' 평점을 매겼다.
대부분의 세계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이 "무슬림과 서방세계 간의 새로운 시작"을 인상적으로 선언했다는 평가를 내리고 있다. 하지만 실질적인 외교적 진전을 가져올 지에 대한 관측에서는 조심스러웠다. BBC방송은 "팔레스타인과 이스라엘 모두가 양보를 해야만 중동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는 오바마 대통령의 주장은 이-팔 양측 모두에게 '터프한' 요구가 되고 있다"고 풀이했다. 오바마 대통령이 중동평화를 이룩하기 위해서는 더 큰 도전을 극복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영오 기자 young5@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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