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이은 지음/민음사 발행ㆍ312쪽ㆍ1만2,000원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아픔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외로움, 고독, 정체성의 혼란…. 벗어나고 싶어도 다시 갇혀버릴 수 밖에 없는 도시인의 슬픔을 그려내고 싶었습니다."
2002년 '현대문학'으로 등단한 김이은(36ㆍ사진)씨의 두 번째 소설집 <코끼리가 떴다> 는 상처입고 불안에 시달려 도망가고 싶지만 막상 갈 곳을 찾지 못하는 도시인들의 우울한 초상화다. 그들은 어떤 이들인가? 코끼리가>
'이건 사랑 노래가 아니야'의 여주인공은 낮잠 자고 일어나 양치하고 밥 먹고 똥을 싸고 웹서핑 하는 것이 일과다. 일 년째 방안에 웅크리고 들어앉아 있는 그녀는 인터넷 의학상담을 통해 조기폐경에 골다공증이라는 진단을 받고 병원을 찾아 나선다.
그녀가 만난 세상은 당혹스럽다. 길을 나서자마자 길 바닥에 금을 그으며 '이곳을 통과할 수 없다'고 가로막고 서있는 이들을 만나고 "난 지금 몹시 아프다"라는 그녀의 절규는 허공 속에 맴돈다. 돌아보니 그녀의 주변에도 상처 받고 소통하지 못하는 이들 투성이다. 외다리 계집애들, 양팔이 없는 남자, 갈비뼈가 툭 튀어나온 남자, 앉은뱅이 노인 등. 그녀가 발을 딛고 있는 곳은 "거대한 병동 같은 세상"(220쪽)이다.
소설 속 인물들이 병들고 고달픈 현실과 맞서는 전략의 하나는 '탈주'다. 작가는 그것을 종종 환상적 요소와 결합시킨다. 우리를 부수고 탈출해 도심을 혼란에 빠뜨리는 말하는 코끼리('코끼리가 떴다'), 혼령이 되어 죽은 자신을 바라보는 사내('지진의 시대'), 낮게 하늘을 날아 국회의사당 꼭대기에서 세상을 관찰하는 사내('여의도 저공비행')들이 출현한다.
사납고 모진 현실에 맞서기 위해 환상 혹은 동화의 세계로 빠져들어가는 방식은 젊은 작가들이 애용하는 소설적 장치다. 그러나 그의 환상은 도피의 수단이 아닌 듯하다. 91학번으로 "아날로그세대와 디지털세대, 386세대와 세대 사이에 낀 세대적 정체성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해왔다"는 김씨는 "내 소설은 현실에 발 붙인 구체적인 삶의 얘기다. 환상은 그 무거움을 완충하는 장치"라고 선을 그었다.
그녀의 소설들이 품고 있는 풍부한 환상성에도 불구하고 월급 85만원의 비정규직 캐디인 엄마와 대학을 졸업하고도 시급 3,000원의 수습 코끼리 사육사로 취직한 청년이 주인공인 '코끼리가 떴다' 같은 작품은 앞으로 그녀의 소설적 방향성을 넌지시 암시한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리며 20대를 통과한 내게 소설쓰기는 유일한 치유책이었다"는 그는 "이제는 상처 받은 이들이 내 소설로 조금이나마 위무 받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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