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나다와 접한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시 휴런강변의 제너럴 모터스(GM) 본사를 방문한 것이 꼭 8년 전이다. '미국의 힘'을 주제로 한국일보 창간 특집 취재를 위해 찾은 GM은 70년 가까이 전 세계 자동차 판매 1위를 놓치지 않은 거대 기업이었다.
포드, 크라이슬러와 함께 20세기 제조업을 상징한다는 이 기업이 기자에게 '저력'이라고 소개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타사를 압도하는 대량생산 능력이나 판매 확대의 원동력이라고 할 적극적인 할부금융이 아니었다. 주문생산과 플랫폼(차대) 통합 등의 원가 절감을 위한 노력이었고, 소비자 서비스 강화라는 고객친화형 마케팅 전략이었다.
무너진 세계 1위ㆍ대량생산 신화
그도 그럴 것이 GM은 이미 1980년대 중반 일부 공장을 폐쇄해야 할 상황에 부닥쳤고 1990년대 초반에는 44억달러가 넘는 엄청난 손실을 보며 명성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00년대는 소형차를 앞세운 일본, 한국 자동차업체의 도전에 더욱 힘겨운 시기를 보냈다. 존 업다이크가 소설 <토끼는 부자다> 에서 미국 중산층의 전형인 주인공 해리를, 장인으로부터 도요타 판매대리점을 물려 받아 유복해지는 것으로 묘사한 게 80년대 초입이다. 토끼는>
그러면 진작부터 위기감을 느끼고 있던 GM은 왜 무너지고 말았을까. 이익이 많이 나는 대형차 생산에 치중해 시장의 변화에 둔감했고 퇴직자에게 주는 의료ㆍ연금 등 복지 혜택이 지나쳤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휘발유 저가 정책을 유지하면서 자동차 연비에 무관심했던 미국 정부의 정책도 한 몫 했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같은 경영의 저변에 '대량생산 제일주의'라는 신화가 불변의 진리로 작동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100년 역사의 전반기에 캐딜락, 시보레 등을 인수합병해 몸집을 키우고 자동차 시장에서 확고한 위치를 다진 GM은 경영에 주름이 지기 시작한 2000년대에 들어서까지도 그 같은 대형화 체질을 버리지 못했다.
GM 사장에서 아이젠하워 정부의 국방장관으로 자리를 옮긴 찰스 윌슨은 "미국에 좋은 것은 GM에도 좋다"고 말한 적이 있다. GM은 이미 국가를 지탱하는 기업이며 망하지 않을 것이라는 자신만만함이 넘친 말이다. 거대한 덩치에 높은 시장점유율은 경영의 불안보다는 만들면 팔릴 것이라는 믿음을 훨씬 현실감 있게 만들었다.
지난해 GM은 77년 동안 이어온 세계판매 1위 자리를 도요타자동차에 내줬다. 경영체질과 전략은 다르지만 도요타 역시 "판매량에서 GM을 이기겠다"는 물량주의를 성장 과정의 중요 경영 목표의 하나로 삼았다. GM의 파산을 앞두고, 도요타 역시 창업 이후 최악의 적자를 기록하는 시기에 판매가 역전된 것은 아이러니다.
시장 재편의 키워드는 기술력
하지만 이 같은 세계 자동차 시장의 위기는 고통스럽지만 도요타에도, GM에도 좋은 선물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대량생산 제일주의'에서 깨어난 GM은 일시 국유화를 거쳐 30% 정도 몸집을 줄여 새 출발할 청사진을 그리고 있다. 도요타도 생산 감축은 물론 연비가 좋은 소형차와 하이브리드차 등 친환경차에서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드는 대대적 원가절감 전략을 세우고 있다.
고연비의 자동차 생산 기술과 시장의 수요에 탄력적으로 대응하는 판매 전략을 핵심으로 21세기 자동차 시장이 재편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어깨를 겨루는 한국 자동차업체에게도 물론 새로운 도전이 아닐 수 없다.
김범수 도쿄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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