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 교수 124명의 시국선언이 있었다. 요약하면 '수십 년 동안 온갖 희생으로 이뤄낸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처했다'는 진단이다. 개인적으로 좀 오버했다는 생각이 없지 않으나, 최근의 상황에서 말할 수도 있는 내용이라 여긴다.
헌데 더더욱 '오버'하고, '해서는 안될 말'을 한 곳은 청와대다. "서울대 교수가 모두 몇 명이냐. 1,700명이 넘는 교수 가운데 시국선언에 참여한 자들은 불과 124명 아니냐"는 코멘트다. 물론 청와대의 공식 논평은 아니다. 기자들이 시국선언의 의미를 묻자 청와대 고위 비서관이 평상심으로 내뱉은 항의였다고 한다.
그것이 청와대의 공식 논평이었다면 오히려 그러려니 하고 넘어갈 수도 있겠다. 상황 파악과 여론동향, 정부가 대응해야 할 정책기조 등을 감안하여 정치적 여과과정을 충분히 거쳤을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 발언은 대통령 주변의 속내가 자연스럽게 드러난 것이며, 비서관들 사이에 이미 공감대가 이뤄졌다고 보여 그냥 넘어가기 어렵다. 1,700여명 가운데 124명이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처했다'고 여기고 있으니, 나머지 1,576명 이상은 '민주주의가 어려움에 처하지 않았다고 여긴다'는 어이없는 인식이 대통령 주변을 둘러싸고 있다고 보인다.
엉뚱한 청와대 시국선언 분석
혹시 "각하, 서울대 교수의 92.7%(1,576명)는 현재 민주주의가 활짝 피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보고를 올리지 않았는지 궁금하다. 유사한 산술적 계산으로, "각하,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다고 애도한 국민이 전체의 10%를 넘지 않았습니다"라고 위로하지는 않았을까. "저 쪽에서 500만명이라고 주장하고 있는데, 한나라당 연찬회에서 밝혀졌듯이 그 숫자에 뻥도 있으니 기껏 300만~400만명 정도이고 그렇다면 국민 10명 중 9명은 애도나 문상을 않은 것 아닙니까"하며 상세한 분석까지 곁들였을 법하다.
노 전 대통령 사건 이후 청와대의 공식 논평은 충분한 정치적 여과장치를 거쳐 '충격과 애도'로 표현됐다. 하지만 청와대 내부의 분위기가 '국민 10명 가운데 1명 정도'로 여기고 있었음은 "1,700여명 가운데 불과 124명"이라는 평소의 소신으로 가늠할 수 있다.
한나라당 내부에서부터 일찌감치 '당정청(黨政靑) 전반적 쇄신'이라는 구호가 나왔을 때 청와대에서 제일 먼저 '턱도 없다'는 반응이 나왔던 것도 이러한 맥락이라면 의아하지 않은 대목이다. '턱도 없다'는 반응은 대통령이나 대변인의 공식 반응이 아니라 청와대 참모들 사이에서 단호하고 일관되게 앞질러 언급됐었다.
서울대 교수들의 시국선언이 다른 대학으로 확산되고 전국 30개 대학의 총학생회까지 번진 상황이지만 개인적으로 여기에 적극 동조하진 않는다. 지금이 과연 민주주의의 위기 상황인가, 1970년대 유신독재와 1980년대 군사정권 시절에나 익숙했던 자기희생적 시국선언이라는 표현을 현 상황에 차용해 쓰는 것이 낯간지럽지 않은가 등에 대해 논란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러한 논란은 논란의 문제이지만, 이를 받아들이는 청와대의 인식에 문제가 있음은 논란의 여지가 없다. 자칫 '진짜 시국선언'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을 스스로 뚫어주는 행태이기 때문이다.
국민소통 앞서 '내부소통'부터
최근 시국선언에서 교수들은 이명박 정부의 소통 부재를 민주주의의 중대한 위기로 지적했는데, 적어도 청와대 내부에선 그것이 맞는 듯하다. 국민과의 소통은 오히려 차후의 문제일 수 있다. 당정청 사이의 소통 역시 다음의 문제일 수 있다. 청와대 내부에서, 정청(政靑) 간에 소통을 막고 있는 '응혈(凝血)'부터 치료해야 한다.
응혈 전 단계에 자리잡은 인사들은 무사안일에 안주하고, 응혈 이후의 라인은 대통령에게 새로운 판단 자료를 제공하지 못한다. 그러다 보니 국가 최고지도자가 국민들에게 호소하는 말은 예나 지금이나 "경제가 문제다. 안보를 챙겨야 한다"는 것밖에 있을 여지가 없다.
정병진 논설위원 bjju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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