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인리 발전소에서 상수역 사거리 방향으로 걸어오다 문득 간판 하나를 보았다. 검고 큰 글씨로 업보연구소라고 씌어 있었다. 위엄스런 글씨체 때문에 처음에는 어느 대학의 부설 연구기관쯤 되는 줄 알았다. 나중에야 그 '업보'라는 걸 알고 대체 업보에 대해 무슨 연구를 할까 궁금했는데 간판 밑의 닫힌 창에 글씨들이 씌어 있었다. 사주 보는 일에서부터 천도제까지 많은 일을 하는 곳이었다. '업'이라고 발음하는 순간 커다란 응어리가 생기는 기분이었다.
아고 뜨거워라, 부랴부랴 그곳에서 멀어졌다. 업보란 업과 과보를 이르는 말이라 한다. 전생에 지은 선악에 따라 현재의 행과 불행이 있고, 현세에서의 선악의 결과에 따라 내세에서의 행과 불행이 있다는 것이다. 현세에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니 전생의 누군가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다.
다음 생의 누군가에게도 누가 되지는 말아야 할 텐데. 자료를 찾느라 웹 서핑을 하다 우연히 암투병 중인 한 엄마의 일기를 읽게 되었다. 오랜만에 한 아이와의 외출이 무척 즐거웠다고 썼다. 위로와 격려는커녕 인과응보로 암에 걸렸다고 생각하는 이들 때문에 암투병이 더 힘들다고 쓴 날도 있었다. 대체 어쩌려고 저렇게 혀끝으로 과를 쌓는지 모르겠다. 얼마 전 그 길을 지나다 자연스레 그 간판을 찾았다. 그 사이 자란 가로수들 때문에 잘 보이지 않았다.
소설가 하성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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