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터 빅셀의 <책상은 책상이다> 의 원제는 '아이들 이야기'이다. 누가 바꿨을지 알 수 없는 이 제목이 아예 원제처럼 굳어졌다. 처음 이 책을 낸 출판사 문장사일까. 그렇다면 책을 편집한 오규원 선생이었을까. 어느 날 한 노인이 '책상'을 '사진'으로 부르자 결심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사진'은 '침대'가, '침대'는 '의자'가 된다. 기존의 이름으로 딱딱하게 굳어진 사물들에 새롭게 이름을 붙이는 이 명명식은 노인에게 크나큰 즐거움이다. 책상은>
그 과정이 마치 옹알이를 하던 아이들이 한순간 말문을 트고 하나하나 단어를 익혀가는 과정과 흡사하다. '개는 짖어도 개라는 낱말을 짖지 않는다'는 말처럼 책상이 반드시 '책상'이어야 할 필요는 없다. 소통을 위한 사회적인 약속일 뿐이다. 언젠가 '총'이란 단어를 떠올렸다가 그 기표와 기의가 너무도 동떨어져 둘이 하나가 될 때까지 뇌어본 적이 있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단어들은 뒤죽박죽되었다.
사람들의 말을 그는 그 식대로 바꿔 받아들인다. 결국 의사소통조차도 불가능해지고 아무도 그를 이해하지 못하게 된다. 그는 침묵했고 그 누구와도 인사를 나누지도 않았으며 자기자신과 자신의 언어로 이야기할 뿐이다. 둘째의 말 배우기에 가속도가 붙었다. 옹알이하던 때의 갇히지 않았던 그 말들이 이제 딱딱한 형식과 약속 속에 갇히고 있다. 책상은 역시 책상일까.
소설가 하성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