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북한 권부의 움직임을 보면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대 세습 작업을 본격화하는 듯한 기류가 강하다. 북한의 최근 잇따른 무력 시위에 대해서도 완전한 권력 승계를 위한 체제 안정화 작업의 일환으로 해석하는 시각이 많다. 특히 "김 위원장의 3남 정운이 후계자로 결정됐다"고 북한이 해외 공관에 통지한 사실이 8일 남한 정보 당국에 포착되면서 '정운 후계설'이 점점 굳어지는 분위기다.
북한의 이 같은 후계 작업 과정은 전문가들의 예측과 어긋나는 것이다. '김 위원장은 피의 숙청 같은 권력 투쟁이 발생하고 체제 개혁 세력이 출현할 가능을 우려해 권력 이양을 서두르지 않을 것'이라는 관측이 많았다. 또 정운 후계설은 '지도자는 반드시 객관적 검증을 거쳐야 한다'는 인물 본위의 북한 후계론에도 맞지 않다. 김 위원장은 30여년 간 치열한 후계 수업을 받은 데 비해 정운의 능력과 영도력은 입증된 것이 거의 없다.
그럼에도 북한이 정운을 후계자로 결정해 권력 이양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면 그 이유는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일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김 위원장은 지난해 뇌졸중으로 쓰러진 뒤 회복했으나 최근 눈에 띄게 쇠약해진 모습이 북한 언론을 통해 공개됐다. 지도자 중심의 유일 체제에서 김 위원장의 건강 이상은 체제를 위협하는 중대 사태다.
때문에 김 위원장은 체제를 장악하고 통치할 만한 건강을 유지하고 있는 상태에서 3대 세습에 속도를 내야 할 시급성을 느꼈을 수 있다. 김 위원장은 '완전한 세습'을 위해 우선 자신의 영도력을 안정화할 필요가 있었고, 그래서 최근 장거리 로켓 발사와 핵 실험 등을 체제 단속용 카드로 쓴 것이라는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김 위원장의 '후계자 띄우기 속도전'이 안정적으로 실현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체제 위기론이 심화하고 경제가 최악인 북한 상황도 그렇고, 정운이 스스로 능력과 카리스마를 입증할 시간도 너무 짧기 때문이다. 그래서 '정운으로의 권력 이양이 절차적 정당성은 거둘 수 있을지 몰라도 완벽한 내용적 권력 승계는 되지 못할 것'이라는 회의론이 많다. 정운 체제가 현실화할 경우 당분간 집단 지도체제와 권력을 분점하는 형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관측도 나온다.
동국대 북한학과 김용현 교수는 9일 "북한이 최근 급박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김 위원장의 건강 불확실성에 부담을 느끼기 때문일 개연성은 충분하다"며 "그러나 아무리 급하다고 해도 후계자로 한 사람을 지목해 공개적으로 후계 작업을 진행할 만큼 북한 체제가 안정적인가에 대해선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최문선 기자 moonsu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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