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재를 넘어가는 저녁 해의 엷은 광선들이 섭섭해합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그리고 나의 작은 명상의 새 새끼들이
지금도 저 푸른 하늘을 날고 있지 않습니까?
이윽고 하늘이 능금처럼 붉어질 때
그 새 새끼들은 어둠과 함께 돌아온다 합니다
언덕에서는 우리의 어린 양들이 낡은 녹색 침대에 누워서
남은 햇빛을 즐기느라고 돌아오지 않고
조용한 호수 위에는 이제야 저녁 안개가 자욱이 나려오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켤 때가 아닙니다
늙은 산의 고요히 명상하는 얼굴이 멀어가지 않고
머언 숲에는 밤이 끌고 오는 그 검은 치맛자락이
발길에 스치는 발자국 소리도 들려오지 않습니다
멀리 있는 기인 둑을 거쳐서 들려오는 물결 소리도 차츰차츰 멀어갑니다
그것은 늦은 가을부터 우리 정원을 방문하는 까마귀들이
바람을 데리고 멀리 가버린 까닭이겠습니다
시방 어머니의 등에서는 어머니의 콧노래 섞인
자장가를 듣고 싶어하는 애기의 잠텃이 있습니다
어머니 아직 촛불을 켜지 말으셔요
이제야 저 숲 너머 하늘에 작은 별 하나 나오지 않았습니까?
● 1934년에 이 시는 발표되었다. 한참 후인 오늘날 읽어도 그렇게 모던할 수가 없다. 지난해 광장에서 촛불을 밝히셨던 많은 분들은 이 시의 제목만을 보신다면 아니! 라고 노할 수도 있겠다.
그리고 그 촛불을 공권력으로 제압하시려 했던 분들은 이 시 제목, 근사하군! 할지도 모르겠다. 아니다, 이 시는 빛과 어둠 사이에서 한 인간이 그 사이에 놓인 시간을 온 감각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완전히 어둠이 와서 캄캄해지기 전의 그 시간, 자물거리는 빛과 아스라해지는 사물 사이에서 한 인간이 아득해지는 시계(視界)를 향하여 드리는 노래이다. 빛과 어둠, 그 사이에서 촛불이 켜질 때까지 그 안에서 즐거이, 이 아름다운 자물거림을 즐기는 인간. 그 인간은 고요하다.
고요하게 서서히 저물어가는 어떤 마음, 촛불이 껴질 때까지 한 인간으로서 누릴 수 있는 작은 감각들을 안으로 오무려 두는 시간. 명상하는 시간, 한없이 망설이는 시간. 그 시간은 존엄하다.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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