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례로 단속할 수 있었다면 학원 심야교습 논란이 불거지지도 않았을 겁니다." 2일 경기도 한 지역교육청 관계자의 푸념이다.
4월 곽승준 대통령 자문 미래기획위원회 위원장의 발언에서 촉발된 '학원 심야교습 금지' 법제화 방안이 당정협의 과정에서 결국 백지화 한 이후 유명무실한 심야교습 시간 제한 조례가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교육계에서는 "지금 조례는 사실상 '식물인간'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다.
학원 운영 시간을 제한하기 위해 각 시ㆍ도교육청이 자체적으로 만든 심야교습 관련 조례는 학원들의 불법ㆍ편법 영업 단속을 강제할 유일한 근거다. 한나라당이 심야교습 금지 입법화에 반대한 이유도 이미 지역별로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는 만큼 교습 시간에 대한 강제적인 규제가 실효성이 떨어진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문제는 현행 조례가 제구실을 전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역별로 다소 차이는 있지만 16개 시ㆍ도교육청은 모두 1~2년 전부터 학원 교습 시간을 오후10시~자정으로 제한하는 조례를 만들어 시행하고 있다. 조례 제정 이유도 청소년의 건강권 보호와 사교육비 팽창 우려 등으로 엇비슷하다.
그러나 지역교육청이 직접 나서 조례 위반 여부를 단속하는 지역은 단 한 곳도 없어 '무용지물 조례'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조례의 실효성을 담보하려면 정기적인 단속과 그에 따른 제재가 수반돼야 하지만, 대부분의 시ㆍ도교육청이 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사교육 1번지' 서울 강남은 단속 대상에 포함되는 학원 수만 5,500여개에 달하지만 전담 인력은 3명이 전부다. 다른 지역교육청들도 2,3명 정도가 단속 관련 업무를 맡고 있어 정기 점검은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단속 관련 지도 부서가 있는 서울은 그나마 사정이 낫다"고 말했다.
부산의 경우 1,300여개의 교과관련 학원이 있으나 5개 지역교육청을 합쳐 20여명의 인원이 학원 등록과 폐원, 불법 영업 조사 등 사실상 모든 학원 관련 업무를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부산시교육청 관계자는 "심야교습 법제화가 무산된 이후 정부 차원의 단속 강화 지시는 없지만 조례만을 근거로 교습 시간 위반 학원을 솎아내기는 어려운 노릇"이라고 말했다.
학원 지도ㆍ점검에 대한 교육 당국의 안일한 태도도 문제로 꼽히고 있다. 경기도교육청 관계자는 "학원끼리 견제하는 심리가 있기 때문에 교습시간을 넘긴 학원이 있으면 곧바로 신고가 들어온다"며 "이런 상황에서 굳이 정기 단속할 필요성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교육계에서는 학원 심야교습 금지 법제화가 백지화 한 이후 현행 조례에 대한 관심이 부쩍 커진 만큼 현실을 감안한 개선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교육과학기술부가 3일 발표할 예정인'사교육비 경감 대책안'에는 학원 교습시간 서울(오후 10시) 수준으로 단축, 운영 실적 시ㆍ도교육청 평가 반영, 불법ㆍ편법 운영 학원에 대한 신고 포상제 도입 등의 내용이 포함돼 있지만, 이 정도론 학원 운영의 정상화를 담보하기엔 미흡하다는 지적이 많다.
한 교육계 관계자는 "정부 대책에는 규정을 어기면 벌을 주겠다는 엄포만 있을 뿐 단속의 효과를 가져올 '어떻게'가 빠져 있다"며 "조례가 제 역할을 하려면 학원들의 편법 운영을 불러온 원인이 무엇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이삭 기자 hir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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