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만화의 역사가 올해로 한 세기를 맞았다. 만화계는 1909년 6월 2일 대한민보 1면에 실린 이도영 화백의 시사만화를 근대 만화의 효시로 꼽는다.
국립현대미술관 특별전 등 이 땅에서의 만화 100년을 기념하는 다양한 잔치 준비로 만화인들이 분주하다. 한국만화100주년위원회 공동위원장인 김동화(59) 한국만화가협회 회장을 홍익대 부근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서 만났다.
"상류문화, 하위문화를 나누는 틀에 동의하지 않아요. 그런 고정관념을 갖고 있는 사람들은 만화를, 예나 지금이나 전혀 보지 않는 사람들이에요. 음악이나 영화도 전엔 하위문화 취급을 받았지만 지금은 낮춰보는 사람이 없죠.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감동을 주고 있기 때문이죠. 오늘날 사람들이 만화에서 얻는 것도 음악이나 영화 못지않습니다."
침 발라 한 장씩 넘기다 보면 손끝이 시커매지던 갱생지에 질 낮은 잉크로 인쇄된 만화책. 이제는 그런 책을 찾기도 힘들지만 만화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은 아직 곰팡내 나는 대본소에 머물러 있는 것이 사실이다. 김 회장은 만화라는 매체에 스민 음습한 하위문화 이미지를 걷어버리는 것을 100주년을 맞은 한국 만화의 첫번째 과제로 인식했다.
"1960~70년대 일본 만화는 문학과 '맞짱'을 뜨려고 했어요. 고급스러운 하드커버에 50페이지씩 되는 평론이 부록으로 실리곤 했죠. 그런 인식이 일본 만화를 세계 최고의 위치에 올려놓은 겁니다. 또 그런 만화를 읽고 자란 세대가 로봇을 만들고 도요타의 기술자가 됐어요. 반면 한국 작가들은 '어떻게 하면 검열에 걸리지 않을까'만 고민해야 했습니다. 전쟁만화에 칼도 그릴 수 없었고… 어린이날 무렵만 되면 만화책을 쌓아놓고 불을 지르는 게 연례행사였죠."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이제는 만화를 전공으로 가르치는 학과가 있는 대학만 140개가 됐다. 김 회장은 "좋은 작품을 축적하지는 못했지만, 노하우는 충분히 축적됐다"고 강조했다.
인디문화를 흡수한 개성있는 작가들이 넘쳐나고, 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웹툰의 대중적 인기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김 회장은 "이제 한국 만화의 다양화, 그리고 세계와의 소통 통로를 고민할 때"라고 말했다.
"30~40대까지 확장된 만화팬을 위한 다양한 만화를 고민해야 합니다. 생활에 찌든 샐러리맨을 위한 만화, 주부들을 위한 만화도 필요합니다. 또 내수만으로는 한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세계를 우리의 시장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현지화 전략이 필요해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지원을 받아서 22명의 젊은 작가를 해외로 파견, 조사활동도 할 계획입니다. 수출되는 나라의 환경에 맞는 만화를 만들기 위해서죠."
유상호 기자 shy@hk.co.kr
사진 조영호기자 vold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