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제조업과 금융업을 대표하는 GM과 씨티그룹. 지난 수십년간 두 회사는 미국 경제의 자존심이자 아이콘이었지만, 이젠 파산과 국유화의 처량한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1일엔 미국증시의 우량주를 대표하는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에서 퇴출당하는 굴욕까지 겪었다. 영원할 것 같던 두 제국은 왜 몰락했을까.‘ GM과 씨티의 실패학’에서 교훈을 찾아본다.
미국의 경영학자 개리 해멀은 2일 월스트리트저널(WSJ) 개인 블로그에서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보호 신청을 이렇게 평했다. "GM은 절벽에서 뛰어내린 게 아니다. 하루에 담배 두 갑을 피워대는 골초처럼 오랫동안 조금씩 스스로를 파괴해 왔다."
맞는 얘기다. 'GM제국의 몰락'은 이미 오래 전부터 예견돼왔다. 단지 시간문제일 뿐이었다.
하지만 모두가 아는 사실을 GM사람들만 몰랐다. 노조와 경영진이 시대흐름을 읽지 못한 채 '파티'를 즐기는 사이, GM은 안으로 곪아가고 있었던 것이다. 마치 로마제국처럼.
흥청망청 노사관계
GM의 노사관계에 '경제'란 없었다. 비용과 산출의 가장 기초적 원칙조차 적용되지 않았다. 이익이 얼마가 나든, 혹은 적자가 나더라도 근로자 임금은 오르기만 했다. 미 자동차산업의 몰락 과정을 서술한 <황량한 공장> 의 저자 로버트 디위는 "고임금이 GM을 파산보호 신청으로 내몰았다"고 주장했다. 디위는 100여년간 GM은 연료효율이 좋고 썩 괜찮은 디자인의 자동차를 생산했지만 고임금을 야기한 '형편없는 경영'으로 몰락의 길을 걷게 됐다고 분석했다. 황량한>
실제로 2006년 기준 시간제 근로자의 임금은 현금과 연금 등을 포함해 시간당 73.26달러(9만원 상당). 이는 도요타 자동차의 미국 내 공장에서 근무하는 같은 조건 근로자의 시간당 임금 48달러보다 1.5배 이상 높은 것이다.
임금 만이 아니었다. 연금과 의료보험 등 복리후생은 한없이 후했다. 현직 근로자는 물론 퇴직자와 그 가족에게까지 종신토록 연금과 의료보험을 지급했다. 2006년 GM과 전미자동차노조(UAW)는 2007년부터 2011년까지 467억달러 상당의 퇴직근로자 건강보험료를 노조에 지불하는 내용의 협약을 맺었다. GM은 이를 위해 노조가 운영하는 별도의 신탁기금에 265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회사가 의료보험을 부담하는 퇴직자와 부양가족수는 무려 43만명을 넘어섰고, 그 돈은 자동차 1대당 1,500달러 정도를 차지했다. 근로자 입장에서만 본다면 세상에 이런 천국은 또 없었을 것이다.
무능한 경영진
GM 경영진을 세 단어로 집약하면 ▦오판 ▦무능 ▦도덕적 해이다. 이들은 시대적 트렌드를 보지 못하는 근시안적 경영으로 GM의 생명을 더욱 단축시켰다.
GM이 절정기를 맞았을 때 최고 경영자들은 시장에서 그들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외형을 키우기 위해 닥치는 대로 집어 삼켰다. 그 결과 시보레, 폰티악, 뷰익, 올즈모빌, 캐딜락, 사브 등의 브랜드를 잇따라 인수했고, 한때 미 자동차산업의 60%를 장악했다.
하지만 과식은 결국 체질을 떨어뜨리는 법. 영광은 잠시였다. 고유가가 밀려오자 GM 자동차는 시장에서 점차 외면당했다.
하지만 경영진들이 덩치 키우기에만 주력했을 뿐, 세계 자동차 시장의 흐름이 바뀌는 것에는 전혀 대응하지 못했다. 세계 자동차시장의 화두가 기름 덜 먹는 소형차, 연비 높은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전환되고 있고, 도요타 폴크스바겐 현대차 등 미국 이외의 주요 완성차 메이커들이 이미 방향을 그 쪽으로 선회했는데도 GM은 여전히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과 픽업트럭 등 연비와는 거리가 먼 차량만 고집했다. GM이 세계1위 자리를 도요타에게 내 준 것은 당연한 결과였다.
그런데도 경영진은 도덕적 해이에 빠져 있었다. 릭 왜고너 등 전임 경영진들이 지난해 파산 위기에도 자가용 비행기를 이용한 것은 너무도 잘 알려진 사실. 수백만 달러에 달하는 연봉도 그대로 유지했다. 노조에게 퍼주고, 경영진은 안주하고, 신기술은 외면하는 사이, GM은 결국 몰락하게 된 것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부 교수는 "GM이 새롭게 출범했지만 세계 자동차 시장의 불황으로 인해 단시일내에 회복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며 "GM의 몰락을 우리 완성차 업체들이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고 말했다.
유인호 기자
■ GM 파산 미국 경제엔 쓴 약
미국 자동차업체 제너럴모터스(GM)의 파산보호신청은 미국 경제에 단기적으로 악재이지만 장기적으로는 회생의 계기가 될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외신에 따르면 GM의 파산보호신청은 예견된 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임직원, 딜러, 전후방 산업 종사자에게 적지 않은 충격을 던지고 있다.
버지니아주의 소도시 프레데릭스버그시의 GM 공장에서 일하는 한 노동자(58)는 "내가 일하는 공장이 폐쇄 예정 리스트에 올라 있다"며 "유리창이 벽돌에 맞아 깨지는 듯한 충격을 느꼈다"고 털어놓았다. 그의 동료(51)는 "실업률이 10%를 오르내리는데 일자리를 구하는 게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GM의 파산보호신청이 미국 경제에 단기적으로 충격을 줄 것이라는 사실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GM은 북미지역에서 해마다 1만 1,500개의 협력업체로부터 500억달러(62조원) 어치의 부품을 조달하고 있다.
북미지역의 GM 임직원 9만1,000여명에게 매달 지급하는 급여가 4억7,600만달러에 달하며 은퇴 연금 수령자도 49만3,000명에 이른다.
WSJ는 "공장 폐쇄, 감원, 딜러망 정비, 은퇴 연금 축소 등이 이뤄지면 미국 경제가 소비 침체, 실업률 증가 등으로 한동안 어려움 겪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이번 파산보호신청이 GM을 경쟁력 있는 회사로 거듭나게 하는 계기가 될 것이라는 점에는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AFP통신은 "GM의 파산보호신청을 앞둔 지난달 31일 미 다우지수가 전일대비 2.6% 급등한 8,721로 마감됐다"며 "GM이 결국 회생하고 이로 인해 미국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AFP통신은 "파산보호신청이 성공적으로 완수되면 GM은 월 부채 상환액이 670억달러에서 90억달러로 줄어들고, 손익분기점에 해당하는 차량 판매대수도 1,000만대로 낮아진다"며 "GM이 2010년이면 흑자 전환에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GM의 현재 손익분기점은 연 1,700만대이다. 이렇게 되면 미국 경제도 회복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자동차 컨설팅사 하보 펠릭스 보고서에 따르면 GM은 2006년 기준으로 근로자에게 현금과 연금을 포함해 시간당 73.26달러(약 9만원)를 지급하고 있는데, 이는 현지에 있는 일본 도요타의 48달러에 비해 1.5배 높다.
GM은 또 자동차 한 대를 생산하는데 전ㆍ현직 직원의 의료비로 1,635달러를 사용해 도요타 자동차가 현직 직원에게만 215달러의 의료비를 지급하는 것과도 대조를 보인다. 이 같은 고비용 구조 때문에 GM은 2008년 한해에만 308억달러(38조원)의 영업적자를 냈다.
이민주 기자 m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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