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영결식 엄수로 마무리 된 것은 정치권에게는 일주일 기한의 휴전이 끝났음을 뜻한다. 상중(喪中)임을 이유로 말을 자제했던 정치권은 30일부터 다시 입을 열 것이다. 멈춰 서있던 정치일정도 재개된다. 총을 내렸던 여야가 다시 전선에 마주 서게 된다.
하지만 전선의 양태는 일주일 전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져 있다. 일주일 전만 해도 여권의 손 안에 있던 정국 이니셔티브는 어느새 야권 쪽으로 넘어갔다.
'전직 대통령의 자살'이란 미증유의 사태는 일주일 동안 이런저런 해석과 감정 이입이 더해지면서 크기를 가늠하기 힘든 폭발력을 정국의 지표 밑에 깔아놓았다. "대한민국 전체에 휘발유가 가득 차 있는 형국이다. 불꽃이 잘못 튀면 감당 못할 상태가 벌어질지 모른다"는 말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가장 우려되는 시나리오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열기가 곧장 현 정부에 대한 반감으로 돌변하는 경우다. 때맞춰 진보진영은 6ㆍ10항쟁 22주년, 6ㆍ15남북공동선언 9주년 등 대규모 집회를 준비하고 있다. 노동계도 하투(夏鬪)를 다짐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뒤엉켜 제2의 '촛불 사태'로 직행하지 말란 법도 없다.
야권은 어떻게 든 불을 붙이려 한다. 책임론의 애드벌룬을 띄우는 것부터 심상치 않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는 "사과해야 할 사람들이 사과를 하지 않는 현상은 분명히 잘못됐다. 확실하게 따질 것은 따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이 대열에 동참해 있다. 야권에선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와 법무장관 및 검찰총장 경질, 특검이나 국정조사 등을 불쏘시개 거리로 꺼내놓고 있다.
하지만 한나라당은 야당 공세에 반사적으로 맞대응하지는 않을 것 같다. 일단 민심의 추이를 지켜볼 것이다. 섣부른 대응이 사태악화를 초래할 수 있다는 판단에 따른 것이다. 여기엔 시간이 흐르면 격앙된 국민 감정도 가라앉을 거라는 기대도 깔려 있다. 사무총장 등 당직 인선을 마무리 짓고, 쇄신특위를 재가동하는 등 내부 정비에 주력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야권의 공세에 언제까지 무대응으로만 버틸 수는 없다. 때문에 6월 초순을 지나면 여야간에 격한 정쟁이 필연적으로 벌어질 것으로 보는 전망이 많다. 한 여권 관계자는 "그간 상중이라 자제하고 있었지만 야당이 정략적 공세에 나선다면 가만히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이 개각 등 분위기 쇄신 카드를 발 빠르게 내놓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한 여권 관계자는 "청와대도 올해 국정을 장악하지 못하면 자칫 돌이킬 수 없는 상황에 빠질 수 있음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어떤 식으로든 수습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변수는 북핵 사태다. 북핵은 노 전 대통령 서거와 함께 지난 일주일 동안 정국을 움직인 또 다른 축이었다. 영결식 이후 추모 열기가 잦아들면 정국의 축이 북핵 쪽으로 빠르게 이동할 가능성이 있다. 사태 전개에 따라선 여권이 다시 정국의 이니셔티브를 쥐는 국면이 펼쳐질 수도 있는 것이다.
이동훈기자 dh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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