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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문명에 반대한다' 자연과 인간을 짓밟은 '파괴자' 문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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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세상/ '문명에 반대한다' 자연과 인간을 짓밟은 '파괴자' 문명

입력
2009.06.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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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저잔 엮음ㆍ정승현 외 1인 옮김/와이즈북 발행ㆍ464쪽ㆍ2만5,000원

반(反)문명운동에 대한 거부감은 대개 그 주장들이 비현실적인 이상론이라는 느낌 때문일 것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 도시를 떠나 전원에서 원시공동체를 일군다거나, 정부를 해체해야 한다는 주장은 치기어린 실험으로 끝난 1970년대 히피운동의 한계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현실성이 미약하다고 해서 그 이념들까지 효용성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반문명운동의 이론적 토대가 됐던 많은 이념들은 지금도 보다 좋은 사회를 일구기 위한 다양한 사회운동의 기반이 되고 있고, 앞으로도 유효한 사고의 틀로 작동할 것이다.

<문명에 반대한다> (초판 1999년, 개정판 2002년)는 이 같은 관점에 따라 과거와 현재의 문명비판적 담론들을 모아 소개한 책이다. 미국의 반문명 운동가 존 저잔이 18세기 사상가 장 자크 루소부터 최근 에코-페미니즘(환경여성주의)의 이론적 기반을 제공한 미국 여성 시인 수잔 그리핀까지 세계 지성 55명의 글을 엮었다. 산업문명 자체를 파괴하자며 테러를 자행한 유나보머의 글도 실렸다.

문명의 개념은 시대와 장소, 이데올로기에 따라 스펙트럼이 다양하다. 반문명론 역시 그에 상응해 수많은 변주를 보인다. 이 책은 그 변주의 흐름에 따라 5부로 돼 있다.

1부 '문명 이전의 우리'에서는 문명의 영향력에서 벗어난 '원시적 삶의 완전성'을 그리워하는 글들을 모았다. 로이 워커, 페어차일드, 루소 등은 원시사회의 순수성을 예찬했고, 아도르노와 윌슨은 문명이 야기한 인간 소외를 고발했다. 2부 '문명의 탄생'은 19세기 말에 이미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고민했던 조지 마시의 글로 시작된다. 이 책의 편저자인 저잔은 농경의 도입과 함께 시작된 인간 문명의 자연 파괴를, 폴 셰퍼드는 문명이 인간 소외와 정신병을 초래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역설한다.

3부 '문명의 본질'은 문명 자체에 인간 파괴와 자연 약탈의 논리가 내재돼 있음을 드러내는 글들로 구성됐다. 프리드리히 실러, 프로이트 등의 고전적 반문명론을 소개한다. 막스 호르크하이머는 '이성의 어두움' 등 2편의 글에서 문명이 인간 본성을 억압하는 파괴적 충동을 품고 있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문명이 일으키는 수많은 부작용은 4부 '문명의 병리학'에서 다룬다. 문명이 발전할수록 약물과 알코올 중독이 심해질 것이라는 우려를 일찌기 제기한 막스 노르다우, 문명의 종말을 자초하는 환경 파괴의 실상을 폭로하는 하인버그, 윌리엄 코키, 데이비드 왓슨 등의 글이 실렸다. 아메리카인디언 인권운동가였던 존 모호크는 '고귀한 선조들을 찾아서'라는 글에서 문명을 벗어난 삶을 야만으로 규정하는 현대인의 오만을 질타했다.

5부 '반문명 선언'은 문명에 맞서 직접 행동에 나설 것을 강조하는 환경운동가와 원시주의자들의 글을 소개한다. 특히 19세기 영국 사회주의자이자 유토피아 사상가였던 윌리엄 모리스의 '에코토피아뉴스'는 자유로운 노동과 평등, 자치가 실현되는 미래 사회주의를 그리면서 반문명운동의 정치적 지향점을 제시한다.

책을 옮긴 정승현 서강대 사회과학연구소 교수는 책머리에 이례적으로 반문명론과 관련 운동을 역사적으로 조망하는 설명을 붙였다. 정 교수는 이 책이 "지구 생태계 파괴와 인간성 상실이 가속화되고 있는 지금, 문명의 허구성을 성찰하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인철 기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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