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축구의 가장 큰 특징은 포지션 파괴다. 전술이 세분화되고 '압박'으로 요약되는 강력한 수비가 대두되자 기존 개념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새로운 유형의 선수들이 출현하고 있다. '포지션 파괴'와 '멀티 플레이어'의 바람을 타고 스트라이커의 유형도 바뀌고 있다. 이른바 '멀티 킬러'의 전성 시대다.
리오넬 메시(22ㆍ바르셀로나)와 함께 '세계 최고 논쟁'의 중심에 있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24ㆍ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오는 여름 유럽축구 이적시장의 최대어로 떠오르고 있는 다비드 실바(23ㆍ발렌시아), 지난해 유로 2008이 탄생시킨 최고 스타 안드레이 아르샤빈(28ㆍ아스널) 등은 전통적인 개념의 스트라이커로 볼 수 없지만 현재 가장 위협적인 공격수로 꼽힌다.
좌우 측면이나 최전방 공격수의 아래 쪽에 위치하는 이들은 포지션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롭게 상대 수비진을 휘젓는다. 이 같은 '멀티 킬러'들의 출현은 '프리 롤(Free-Role)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내기도 했다.
■ 왜 멀티 킬러 시대인가
현대 축구의 전술적 특성은 메시, 호날두 같은 새로운 유형의 공격수들이 각광 받는 계기를 만들었다. 메시와 호날두, 아르샤빈은 포지션상 측면에 위치하지만 경기에서 실제 움직임은 중앙 스트라이커에 가깝다. 포백 수비라인을 기초로 한 4-3-3, 4-4-2 포메이션을 주로 사용하는 현대 축구의 전술적 특징 탓이다.
박성화 전 올림픽 대표팀 감독은 "측면 수비수들의 적극적인 공격 가담으로 측면 미드필더(공격수)들의 활동 영역이 넓어져 중앙 공간으로 침투해 득점을 노리는 경향이 늘어났다"며 최근 측면 공격수들이 맹위를 떨치고 있는 원인을 설명했다. 박 감독은 또 "현대 축구의 전술적 특징상 공격라인에서 고정된 것은 없다.
특히 4-3-3 포메이션의 경우 끊임없이 위치를 바꾸며 파고 들 공간을 노리기 때문에 중앙 공격수와 측면 공격수의 개념 구분이 모호해졌다. 티에리 앙리(바르셀로나)가 최근 측면에 나서고 있지만 골을 많이 기록하는 것이 이런 현대 축구의 특성을 잘 보여주는 예"라고 말했다.
■ 포지션 뿐 아니라 역할도 멀티
'멀티 킬러'들의 돋보이는 점은 단순히 골을 많이 넣을 뿐 아니라 팀 공격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해낸다는데 있다.
득점 뿐 아니라 '조력자'로도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전술적 가치가 높은 것이 이들 '멀티 킬러'들의 공통점이다. 메시는 20일 현재 올시즌 50경기에 나서 37골 18도움을 기록했다. 산술적으로 따지면 경기 당 한 골 이상이 그의 발을 거쳐 만들어진 셈이다. 특히 '세계 최고의 무대'로 꼽히는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본선 11경기에서 8골 5도움으로 펄펄 날았다.
호날두는 지난 시즌 득점이 늘어나며 '이기적인 플레이어'라는 비판을 들었지만 2006~07시즌 52경기에서 26골 20도움을 기록하며 '찬스 메이커' 노릇을 훌륭히 해낸바 있다. '무회전 프리킥'으로 표현되는 빼어난 킥 솜씨는 호날두를 더욱 돋보이게 하는 요소다.
스페인 축구의 새로운 에이스로 부상한 실바는 처진 스트라이커와 좌우 날개 어디에 배치해도 제 역할을 해내는 '멀티 맨'으로 최근 유벤투스, 레알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등 명문 클럽으로의 이적설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또 유로 2008에서 처진 스트라이커로 활약하며 러시아의 4강행을 이끈 아르샤빈은 아스널 이적 후 왼쪽 날개로 포지션이 변경됐지만 지난달 22일 리버풀전에서 4골을 작렬하는 기염을 토했다.
■ 한국의 멀티 킬러들은
한국 축구에서 '멀티 킬러'에 가장 가까운 선수는 이근호(이와타)와 박주영(이상 24ㆍAS 모나코)을 꼽을 수 있다. 두 사람 모두 올림픽 대표팀과 A대표팀에서 측면과 중앙 공격수로 활약했고 박주영은 세트 피스 전담 키커로도 좋은 활약을 보였다. 측면과 중앙을 휘젓고 다니며 공격의 숨통을 틔는 역할을 할 수 있는 이들이다.
박성화 감독은 이근호, 박주영 외에 '멀티 킬러'로 성장할 잠재력이 큰 선수로 이상호(22ㆍ수원)와 이청용(22ㆍ서울)을 꼽았다. 이상호는 '프리 롤' 임무를 맡기기에 적합한 능력을 지녔고, 이청용은 최근 컨디션이 떨어졌지만 무한한 잠재력을 지닌 선수라는 것이 박 감독의 평가다.
김정민 기자 goav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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