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처음으로 존엄사 권리를 인정했다. 명백하게 회복할 가능성이 없는 환자가 인공호흡기에 의존한 연명(延命)치료를 거부하고 자연스러운 죽음을 택할 자기결정권을 인정한 것이다.
대법원 판결은 삶의 최종 단계에 이른 인간이 자율적 의사와 결정에 따라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며 죽음을 맞을 수 있는 길을 열어준 의미가 크다. 대법원은 그 같은 결정이 '모든 국민은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가지며,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가진다'는 헌법 정신과 어긋나지 않고 사회 상규(常規 )와도 부합한다고 밝혔다. 환자의 생명권을 인간의 존엄성보다 더 높은 가치로 삼아 존엄사를 인정하지 않던 과거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다.
이번 판결로 의료 현장에서 연명치료 중단이 불가항력적으로 공공연하게 행해지는 현실과 법 제도의 불일치를 해소하게 됐다. 특히 연명치료를 거부한다는'사전의료지시'를 하지 않은 환자도 그 의사를 추정해 치료를 중단할 수 있도록 한 점이 두드러진다. 대법원은 "평소 환자의 의사 표현 내용 등 객관적 사정과 정황 등을 감안해 의사 등으로 구성된 위원회가 판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단서를 붙였지만, 소수의견이 '환자 본인의 의사를 추정하기 어렵다"고 지적한 것은 주목할 만하다.
따라서 이번 판결은 존엄사 허용 입법과 제도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의 시작을 알리는 선언으로 봐야 할 것이다. 종교적 신념 등에 따라 존엄사에 부정적인 시각과 부작용 우려가 엄존하는 현실인 만큼, 구체적 방안에 관한 사회적 합의를 이루는 것이 과제이다. 이를 위해 사회적 논의기구 구성을 고려할 만하다. 존엄사 허용 범위와 판정 기준, 판정 및 결정의 주체, 실행 절차 등을 폭 넓게 논의해 사회적 공감대를 넓힐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우려되는 것은 무의미한 연명치료의 중단이 무분별하게 오ㆍ남용되는 것이다. 환자가 경제적 궁핍이나 가족들의 현실적 고통 때문에 섣불리 죽음을 선택하거나 의료진이 오판ㆍ오진하는 일이 없도록 안전망을 촘촘하게 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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