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의 국민장이 끝났다. 지난 일주일 동안의 추모열기는 뜨거웠다. 내리쬐는 태양과 장대비 아래 몇 시간씩 기다려가며 봉하마을 빈소를 찾은 100만 명을 비롯해 전국 각지의 분향소를 찾은 조문객이 400만 명을 넘었다. 분향소에 들르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으로 고인의 명복을 빌었을 사람들까지 합치면 인구의 절반은 훌쩍 넘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다.
한국현대사를 통틀어 한 지도자의 죽음이 이만한 슬픔과 비탄을 불러온 적이 또 있었을까. 애도와 추모의 거대한 물결은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와 지난해 촛불시위에 이은 또 한 차례의 대규모 집단 교감 경험을 한국사회에 더했다. 이제는 새로운 문화인자로서 정착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
물론 지난해 촛불시위와 마찬가지로, 이번 추모열기에 몸을 실은 사람들의 속마음은 저마다 색깔이 다를 수 있다. 우리가 여러 차례 지적했듯 추모열기를 정파적 이해로 이어가려는 움직임도 있었고, 적잖은 성공도 거두었다. 또 슬픔처럼 현장 전파성이 강한 감정도 없다.
휴대폰과 인터넷 등 새로운 전달수단의 비약적 발달로 대중동원이 과거 어느 때보다 손쉽고 재빨라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런 요인만으로 노 전 대통령의 이름을 외쳐 부르며 오열할 정도로 깊고 진한 대중의 감정이입을 다 설명할 수는 없다. 자연스러운 감정이입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 대상의 매력이 전제돼야만 한다.
그는 김구 선생과 같은 민족지도자도, 시대의 어둠을 찢은 의사(義士)ㆍ열사(烈士)도 아니었다.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이미지도 다른 사회 운동가들에 비하면 약하다. 정치지도자로서 남북 화해에 기여한 공로도 김대중 전 대통령에 견주기 어렵다. 역대 대통령 가운데 그에게서 유독 두드러졌던 것은 끊임없이 기득권을 깨부수려고 애쓴 점이다. 방법과 절차의 무리로 그의 도전은 실패로 끝났지만, 고정된 판을 깨뜨려 변화의 여지를 두자는 정신만은 국민의 가슴 속에 살아 있다.
정부는 국민장 기간 내내 신경을 곤두세웠다. 추모집회에서 흔한 감정 폭발이 대규모 반정부 시위로 이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였다. 아무리 추모시위라도 도를 넘으면 제지해 마땅하고, 시간이 가면 추모열기도 식게 마련이다. 그러나 '경제 살리기'를 위해 잠시 접어둔 국민의 변화 욕구는, 정책이 기득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움직이는 조짐을 보이면 언제든 깨어날 수 있다. 정부가 정말 신경을 써야 할 민심의 흐름이다. 진정한 소통과 개혁의 정치가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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