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의 '진보성'이 의심받고 있다. 집권 4개월을 맞은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대선 유세 때의 공약과는 달리 중도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비판이다. 오바마 대통령의 진보적 지지세력이 제기하기 시작한 정체성 논란은 민주당 의원들까지 그의 일부 공약에 반기를 들면서 확산되는 기미를 보이고 있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오바마 대통령의 정책이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과 '연속성'을 보이고 있다는 진보적인 비평가들의 발언을 전하면서 오바마 행정부가 "부시 2.0"이라는 달갑지 않는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고 20일 전했다.
오바마가 진보에서 중도로 변신하고 있다는 비판은 특히 경제위기와 대 테러 정책에서 두드러진다. 오바마 대통령은 취임 직후 부시 행정부 인권탄압의 상징으로 비쳐졌던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를 폐쇄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수감자 241명의 이감을 둘러싸고 국내 정치권의 거센 반발에 직면하면서 약속했던 내년 1월까지 수용소를 폐쇄할 수 있을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대선 공약에서 유턴해 관타나모 군사재판을 재개키로 하고, 아프가니스탄ㆍ이라크 수감자 학대 사진 공개에 반대한 것이 이런 의심을 사게 된 배경이다. 관타나모 문제에서는 공화당은 물론 민주당 의원들까지 수위를 낮출 것을 요구하면서 오바마 대통령을 압박하고 있다.
뉴욕타임스는 이날 민주당 지도부가 입장을 바꿔 관타나모 수용소 폐쇄를 위해 오바마 대통령이 요청한 8,000만달러를 보류키로 했다고 보도했다. 민주당은 수용소 폐쇄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만, 수감자들이 미국으로 이송되지 않는다는 명확한 계획이 제시돼야 예산을 줄 수 있다는 입장이다.
경제위기에 따른 천문학적인 재정적자도 오바마의 진보적 발걸음을 가로막고 있다. 부유층에 대한 감세 혜택을 줄이고, 온실가스 배출업체에 세금을 물리겠다는 공약은 경제위기의 파도에 휩쓸려 언제 시행될지 불투명하다. 티머시 가이트너 재무장관은 '월스트리트'에 지나치게 유화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언론들은 오바마 대통령의 건강보험 개혁이 그의 진보성을 가늠할 수 있는 가장 큰 시험대가 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다. 일부에서는 오바마 대통령이 건강보험 시장에 대한 정부 개입을 철회할 지 모른다고 우려하고 있다. 벤 넬슨, 이반 베이, 막스 보커스 등 중도성향의 민주당 상원의원들은 "정부가 보험시장에 뛰어들면 민간업체들은 고사할 것"이라는 보험업체의 목소리에 동조하는 모습까지 보이고 있다.
브라운대학의 짐 모런 정치학 교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일생일대의 기회인 건강보험 개혁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가에 따라 선명성 논란과 진보 세력 이탈 등의 향배가 결정될 것"이라고 말했다.
워싱턴=황유석 특파원 aquariu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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