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에 대한 국세청 세무조사 무마로비 수사가 빠르게 진행되면서 지난해 7,8월 수 차례 있었던 '세무조사 대책회의'의 실체가 베일을 벗고 있다.
검찰이 파악한 바에 따르면 당시 서울 시내 모 호텔 등에서 열린 대책회의에는 박 전 회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김정복 전 중부지방국세청장 등 3명을 주축으로 몇몇 태광실업 실무자들이 참석했다. 애초 이종찬 전 청와대 민정수석도 참석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검찰은 "이 전 수석은 참석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박 전 회장과 '의형제'처럼 지내온 천 회장과, 사돈인 김 전 청장 등 박 전 회장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인물들만 참석한 것이다.
박 전 회장은 그 자리에서 탈세 혐의로 고발될 경우 구속까지 당할 수 있다고 절박함을 호소했고, 천 회장과 김 전 청장은 평소 친분이 있던 인사들과 접촉해 검찰 고발을 막아보기로 했다. 천 회장은 한상률 당시 국세청장과 여권에 대한 로비를 담당하기로 했다. 천 회장은 한 전 청장과 서울과학종합대학원 최고경영자 과정을 함께 다녀 친분이 있었고, 이명박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점 때문에 여권 인사들과도 광범위한 인맥을 쌓고 있었다.
김 전 청장은 국세청 인맥을 이용해 세무조사 실무라인을 접촉하기로 했다. 박 전 회장에 대한 세무조사를 담당하고 있던 서울지방국세청 조홍희 조사4국장 등과 전화통화를 하거나 직접 만나서 세무조사 상황을 알아보고 선처를 부탁하기로 했다.
검찰은 이들이 대책회의에서 역할을 정하고 실행한 뒤 다시 만나 이후 역할을 논의했던 정황을 상당부분 확인했다. 통화 내역 추적을 바탕으로 한 전 청장, 국세청 실무자의 증언도 확보했다. 홍만표 대검 수사기획관은 "천 회장은 5개의 휴대폰을 가지고 있는데 통화내역을 모두 추적 했다"고 말했다. 검찰은 천 회장이 제3의 여권 실세와 접촉한 흔적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종찬 전 수석의 경우, 일부 세무조사 무마 로비에 합류한 흔적이 있지만 천 회장보다는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는 않은 것으로 검찰은 파악하고 있다. 천 회장과 달리 로비에 나서는 대가로 박 전 회장에게서 별도로 금품을 받은 혐의가 드러나지 않아 알선수재 혐의를 적용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이 전 수석이 2003년 서울고검장에서 퇴임한 직후 변호사 사무실을 열면서 박 전 회장에게서 받은 7억원의 성격과 이를 돌려준 과정을 살펴보고 사후 뇌물죄 적용이 가능한지 따져보고 있다. 홍 기획관은 "주장대로 실제 돈을 모두 갚았는지, 투자업을 하는 동생이 다른 사람 돈으로 갚은 것은 아닌지 모두 살펴봤다"고 말해 의심스러운 정황을 확보했을 가능성을 내비쳤다.
한편, 박 전 회장이 추부길 전 청와대 홍보기획비서관에게 세무조사 무마로비 대가로 2억원을 준 것은, 대책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는 아니었으며 박 전 회장의 심복인 정승영 정산개발 사장의 제안이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박 전 회장의 '로비'루트와 전략이 다양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이진희 기자 rive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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