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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임(不妊) 정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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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불임(不妊) 정당

입력
2009.05.31 2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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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노동당의 전략가 필립 굴드(Philip Gould)는 만년 야당으로 전락한 당을 구하기 위해 '신 중산층 전략'을 새로운 선거전략으로 제시했다. 노조에 휘둘린 좌파 극단주의 배격, 반 유럽정책 폐기, 재분배를 위한 고세율 정책 완화, 핵 비무장론 탈피 등이다. 1987년 총선을 앞두고 당의 승리를 위해선 머리부터 발끝까지 환골탈태해야 한다고 판단한 때문이다. 79년 보수당의 대처 정권 출범 후 바닥을 기는 당 지지도를 끌어 올리기 위해선 노조의 볼모가 된 정당, 세금 올리는 정당, 경제를 잘 다루지 못하고 안보에 허약한 정당이란 이미지를 해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

■굴드는 인구통계학적 변화 분석을 통해 신중산층 전략을 수립했다. 재집권의 전기를 마련하려면 철저한 정책 재검토(policy review)를 바탕으로 당의 현대화와 지지기반 확대가 시급하다고 본 것이다. 당시 닐 키독에 이어 잭 스미스가 이끌던 노동당은 노동자 뿐만 아니라 모든 계층으로부터 외면당했다. 대처의 보수당이 신자유주의 개혁과 탄광노조에 대한 엄정한 법 집행으로 장기 집권하는 동안 노동당 지지율은 급락해 '불임(不妊) 정당'이 됐다. 그런데도 좌파와 노조는 신중산층 전략에 반발했다. 굴드의 전략은 중산층에게 항복하는 것으로 순간의 승리를 위해 영혼을 파는 야바위라는 것이었다.

■굴드는 '용서할 수 없는 우파 개량주의자'로 몰렸다. 노조와 좌파에 지배당한 당은 변화를 거부했다. 당은 또 참패했다. 좌파적 교조에 얽매여 민심을 읽지 못한 노동당은 79년부터 97년까지 18년간 4번 연속 총선에서 패배했다. 굴드는 좌절하지 않고 94년 7월 당수로 선출된 토니 블레어의 참모로 일하면서 변화와 대중주의를 결합한 '신노동당(New Labor)'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차기 총선을 준비했다. 노조 개혁과 사회주의적 당헌 수정을 통한 시장경제 수용, 세율인상 자제 등 신노동당 정책 공세를 벌여 97년 총선에서 마침내 승리했다.

■굴드는 좌파의 숱한 압박과 수모를 겪었지만 탈 이념을 바탕으로 변화와 개혁의 신노동당 플랜을 밀어붙여 총선 승리의 이념적 토대를 제공했다. 국내에서도 김효석 민주당의원이 탈 이념과 당의 현대화를 겨냥한 뉴 민주당 플랜을 발표한 것을 계기로 당 정체성 논란이 뜨겁다. 김 위원장의 뉴 민주당 플랜은 굴드의 뉴 노동당 플랜과 비슷하다. 민주당이 영국 노동당을 반면교사로 삼아 이념의 굴레를 벗고 개혁의 길을 걸어야만 민심도 돌아올 것이다.

이의춘 논설위원 ec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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