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7일 오후 서울 강서구 가양3동 주민센터. 청각장애인(2급)이자 기초생활수급자인 신경례(84) 할머니가 사회복지담당 김성희(36ㆍ여) 주임을 불쑥 찾아왔다.
"그 동안 정부와 이웃들로부터 많은 도움을 받아 늘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 나 죽으면 얼마 안 되는 재산이지만 가난한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나눠 주고 싶어." 할머니는 더듬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그런 뜻을 담은 유언장을 쓰겠다는 말에 센터 안에는 잠시 침묵이 흘렀다. 이어 강영식(54) 동장 등 증인이 지켜보는 가운데 유서가 작성됐다. 할머니가 학교 문턱조차 밟아본 적 없는 '까막눈'인 탓에 유서는 김 주임이 대필했다.
'본인 신경례가 사망 시 전 재산(가양3동 주공임대아파트 보증금 해지금액, 은행예금)은 강서구 장학회에 기부하고 그 재산은 가양3동에 거주하는 불우이웃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쓰이도록 한다.' 할머니는 유언장에 자신의 이름 석자를 꾹꾹 눌러쓰고 준비해 온 도장을 찍었다. 얼굴에는 환한 미소가 번졌다.
비록 500만원 안팎의 작은 돈이지만, 학생들의 배움에 소중히 쓰일 것을 생각하니 벌써부터 행복한 듯 했다. 강 동장은 "할머니의 숭고한 뜻이 학생들에게 큰 힘이 될 것"이라며 고마워했다.
신 할머니는 2007년 말에도 기초생활수급자 생계비(월 40만원)와 장애인 수당(월 16만원) 등 평생 아끼고 모은 2,000만원을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기탁해 이 지역 학생 14명에게 골고루 나눠줬다.
그는 당시에도 "앞으로의 생활은 정부에서 주는 생계비로도 충분하다"며 "어려울 때 늘 도움을 준 이웃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1926년 경기 여주의 한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난 신 할머니는 스물 한 살에 결혼했다. 아들 하나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렸지만 남편이 늑막염으로 갑자기 세상을 등져 서른 아홉에 혼자가 됐다. 아들마저 다니던 회사가 부도나 결국 며느리와 이혼했고, 1999년 집 앞에서 심장발작을 일으켜 숨졌다.
청천벽력 같은 비보에 무너져 마지막 끈조차 놓아 버리고 싶었을 때, 평소 자신을 위로하고 다독여준 이웃들이 할머니의 곁을 지켜주었다. 아픈 데 없는지 늘 찾아 보고, 밑반찬도 알뜰하게 챙겨주었다.
할머니는 그런 이웃들의 사랑에 대한 보답으로 또 다른 '나눔'을 택했다. "어차피 못 쓰고 죽을 돈인데 돈 없는 학생들에게 줬으면 좋겠다. 못 배운 게 한이 됐다."
강서구는 할머니의 뜻에 따라 사망 후 기탁금이 최종 결정되면 장학금 지급대상과 금액을 정해 가양3동의 학생들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구는 올 3월 지역의 발전을 위해 헌신한 이들의 명예와 기부문화 확산을 위해 제정, 공포한 구민장 조례에 따라 신 할머니가 사망할 경우, 장례를 구민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김종한 기자 tellm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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