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편집국에서] 참을 수 없는 문학의 가벼움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편집국에서] 참을 수 없는 문학의 가벼움

입력
2009.05.28 23:51
0 0

요즘 한국 문학이 한없이 하찮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확히 말하면 한국 문학이 아니라 한국의 문인들이겠다. 지난 시절 누가 뭐라 해도, 문학 혹은 문인들을 터무니없이 업수이 여기는 속류 현실주의자들(그들이 가장 자주 입에 올리는 말이 "소설 쓰고 있네" 혹은 "소설 읽을 시간 없어" 같은 표현이다)의 삐딱한 시선에도 불구하고, 문인들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 사회의 가장 치열한 정신이었다. 그 치열한 정신이 이제는 중구난방, 가십거리나 쏟아내는 부류로 취급받는 처지를 자초하고 있는 것 같아 서글프다. 참을 수 없는 문학의 가벼움이다.

이른바 황석영 변절 논란이다. 이명박 대통령의 중앙아시아 순방에 동행해 현 정권을 '중도 실용'으로 규정한 그의 행동과 발언 때문이다.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문인들 중에서는 김지하, 복거일, 이문열 등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말문을 열었다. 김지하는 민주화운동의 상징적 존재이며, 복거일은 자유주의적 보수주의자를 자처하는 인물이고, 이문열은 김대중 정부 때 책 화형식까지 당했던 작가다. 황석영을 포함해 저마다 입장은 달라도 시대의 첨예한 정신이었다. 그런데 그들의 반응도 가십이다.

김지하는 "황석영이 발언하는 것은 작가적 자기 자유다. 석영이가 그렇게 나쁜 놈 아니다"라고 말했다. 나쁜 놈 아니고 자유가 있으면 "오른쪽으로 갔다 왼쪽으로 갔다" 해도 되는 존재가 작가인가? 그의 말에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이문열은 27일 한 방송 인터뷰에서 황석영에 대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선후배 문인이니 참 관대한 평가라는 생각이 든다. 복거일은 "좌파 정권에서 핍박받은 이문열 같은 분을 제쳐놓고 황석영을 데리고 가면 우파에 속한 시민은 어떻게 보겠냐"는 뜨악한 말을 했다. '중도 실용' 발언을 하면서 "욕 먹을 각오 돼 있다"던 황석영은 사후에 논란이 일자 "(순방 동행을) 신중하게 결정할 걸 그랬나 싶다"면서도 "작가는 언제나 사회의 금기를 깨는 자"라고 모를 말을 했다.

그들은 작가적 자유와 사회의 금기를 운운했지만, 바깥에서는 한 마디로 우습지도 않다는 반응들이다. 변절, 코미디, 망언, 욕할 가치도 없다, 노벨문학상을 위한 노림수라는 갖가지 비난과 비아냥이 쏟아졌다. 좌파 우파 하는 입장에 따라 입맛대로 해석하는 것은 물론이고 '새로운 전향 방식'이라는 개념적 규정까지 있었다.

이러쿵 저러쿵하더라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작가는 작품으로써 이야기해야 한다는 원론적인 것이다. 엉뚱한 데 발 들이밀고 집적대는 순간 속류 현실주의자들은, 너 잘 걸렸다, 하고 난자를 시작한다. 30~40여년을 수백만, 수천만 부 팔린 그들의 작품 읽으며 세상 보는 눈을 키웠던 독자들이 무엇보다 제일 황당하다.

독자들은 문인들이 과연 지금도 작품으로 그 이름값을 하고 있는가, 이름에 올라앉아 엉뚱한 짓이나 하고 있지 않나 하는 질문을 던질 것이다. 한 원로 문인은 이야기 끝에,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대학에서 문학 전공 사라지고 한국 땅에서 소설 자체도 소멸할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단정적으로 내놓기도 했다.

인생은 역사보다 짧다. 움직일 수 없는 사실이다. 가끔 역사를 뛰어넘는 인생도 있다. 하지만 그러려고 욕심 부리다 가십거리로 전락하고 변절의 낙인이 찍히기도 한다. 오늘 장례식을 치르는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은 그걸 피해 역사의 벽에 몸을 던져버리고 만 경우일 것이다.

하종오 문화부장 joha@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