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소 조선사에 대한 기업회생 작업이 'RG(선수금환급보증)' 에 발목이 꽉 잡혔다. 1차 구조조정 평가에서 C와 D등급을 받은 4개 중소 조선사 가운데 C&중공업, 녹봉조선, 진세조선이 RG에 대한 은행과 보험사들간의 갈등 때문에 구조조정에 실패한 상태다.
도대체 RG가 뭐길래 중소 조선사 구조조정의 발목까지 잡은 '원흉'으로 지목되는 것일까.
RG란 'Refund Guarantee'의 약자로 선주가 조선사에 선수금을 주고 받는 일종의 보증서. 통상 선주는 선박을 주문한 후 배 가격의 70%정도에 해당하는 선수금을 몇 차례 나눠 조선사에 지급하고, 보증서인 RG를 요구한다. 이때 은행은 조선사로부터 수수료를 받은 뒤 RG를 발급하고, 조선사는 다시 이를 선주에 제공한다. 은행도 보험사에 수수료를 내고 RG보험을 들어 만약의 사태에 대비한다.
때문에 일단 조선사가 계약서에 명시된 대로만 배를 만들어 선주에게 주면 RG는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증서다. 조선사는 RG 한 장으로 배 값의 일부를 미리 받아 좋고, 은행과 보험사도 수수료 수익을 짭짤하게 챙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선사에 문제가 발생할 경우는 RG는 무서운 '연대 보증서'로 돌변한다. 선주가 계약 위반을 이유로 조선사에 선수금 반환을 요청했는데 조선사가 갚을 능력이 없다면 보증을 선 은행이 고스란히 물어줘야 한다. 은행은 다시 보험사에 보험금 지급을 요청해 피해액을 보상받아야 한다. 하지만 은행과 보험사간의 이해관계 때문에 법적 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다.
최근 진세조선를 둘러싼 신한은행과 메리츠화재의 갈등이 대표적인 경우다. 진세조선이 납기일에 맞춰 배를 넘기지 못하자, RG를 발급한 신한은행은 2,000만달러를 선주에 물어주고, 메리츠화재에 보험금 지급을 요구했다. 하지만 메리츠화재는 "진세조선이 선주사를 상대로 낸 중재신청 결과가 나와야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버텼고, 신한은행은 "당장 내놓으라"며 소송을 냈다.
더욱이 RG에 대한 정체성 문제가 명확히 해결되지 않은 것도 문제다. 쟁점은 RG를 대출채권에 포함시키냐의 여부. 은행들은 당연히 포함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보험사들은 RG보험이 담보없이 보험료를 받고 지급보증을 해주는 순수한 보험상품에 불과하다며 반대하고 있다.
결국 채권금융기관조정위원회가 나서 선수금이 이미 들어온 RG에 대해서는 대출채권으로 반영하자고 중재안을 냈지만 보험사들은 여전히 불만이다. 국내 보험사들도 자신들이 보유한 RG보험 가운데 80% 이상을 해외 보험사에 재보험을 들어놓은 상태다. 결국 최대 손실 규모가 20%밖에 되지 않는데 확정된 선수금(50% 이상) 만큼 책임을 지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이다. C&중공업과 녹봉조선, 진세조선 모두 은행과 보험사간에 RG 갈등 때문에 회생의 기회도 잡아보지 못하고 좌초하고 말았다.
채권단 관계자는 "이제 RG문제는 복잡한 이해관계 때문에 은행과 보험사의 양자 합의로 풀기 어려운 상황이 됐다"며 "금융당국이 명확한 가이드라인을 제시해 서로의 이견을 좁히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손재언 기자 chinas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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