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 아침에 느긋한 아침을 먹다가 숟가락을 툭 떨어뜨렸다. 가슴이 철렁거리다가 순간적으로 머리 속이 하얗게 되고 말았다. 정치학을 30년 가까이 공부하면서 정치적 사건들이 생길 때마다 나름대로 원인과 이해득실, 그리고 향후 전개전망에 대해 직관적인 떠올리곤 했는데 이번에는 아무런 생각이 떠오르지 않았다.
우선 감정적으로 울분이 생긴다. 갈피가 잡히지는 않았지만 한국정치의 현실이 이런 것인가 하는 참담한 생각뿐이었다. 허둥거리는 마음이 시간이 지나도 가라앉지 않았다. 수 삼 일이 지난 이제야 마음을 추스르고 이것저것 궁리를 해보았다.
구조적 원인 꼼꼼히 따져야
일반적으로 세상은 점진적으로 변화한다고 설명한다. 급격한 가치의 변화와 지배 엘리트의 교체를 혁명적 사건이라고 부르는데, 사실 역사 변화에서 그 같은 경우는 많지 않다. 왜냐하면 급격한 변화를 위해서는, 특히 폭력을 수반하지 않는 경우라면, 국민들의 상당한 결심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점진적 변화는 기득권 변화의 한계를 갖는 데 비해, 단절적 변화는 마치 폭풍이 바다 밑을 뒤집는 것처럼 새로운 질서를 제시한다.
그런 정치실험을 감행한 이가 노무현 전 대통령이었다. 대통령으로서 그의 업적에 대한 평가는 양분화 되어있지만, 변화라는 시대의 목소리를 읽어내려 노력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다.
무릇 모든 일에는 근인(近因)과 원인(遠因)이 있다. 이번 일에도 직접적 원인으로 도덕성을 무기로 정치개혁을 외쳤던 노 전 대통령 측근의 도덕적 흠결이 문제의 시작이었다. 그러나 좀 더 구조적인 문제들이 무엇이었는지 짚어볼 필요가 있다. 대통령에게 집중된 권력, 사회에 팽배한 물질우선의 가치, 제로섬적인 정치 경쟁, 검찰의 수사진행 방식, 심지어 언론의 선정적 추측 보도도 노 전 대통령의 죽음과 포괄적으로 관계가 있다.
어떤 하나의 원인만을 지적할 수 있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어찌 됐든 한 개인을 구조가 절망으로 빠뜨린 것이며, 결코 한 사람의 의지만으로 세상을 바꾸지는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기는 싫지만 또 다시 확인시켜 준 셈이다.
지금 국민이 받은 고통을 감성적 울분이나 분노의 표출로 치유할 수는 없을 뿐 아니라 그렇게 치유되어서도 안 된다. 국민장 기간을 엄숙하고 진중하게 지난 뒤 문제의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꼼꼼히 따져보아야 한다. 모두가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이 한국 민주정치 발전에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바라고 있다. 따라서 경황이 없는 지금 누구 탓인지 따지기 보다는 좀 더 정신을 가다듬은 뒤 다각적 문제 제기를 통해 해법을 찾는 것이 현명할 것이다.
시민들의 자발적인 추모가 국가 권력과 충돌한다는 소식을 들으면서 많은 국민은 갑갑하다. 경찰 버스에 둘러싸인 텅 빈 파란 잔디의 서울광장 사진이 을씨년스럽게 느껴지기까지 한다. 정부가 제 2의 촛불을 우려한다면 통제가 아니라 국민들의 정서를 보듬는 방법을 강구하는 것이 급선무이다. 선동세력을 가려내야 한다는 발상은 결국 대다수 국민이 소수의 선동세력에 휩싸일 정도로 지각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지금 어느 때보다 여론이 민감하고 불안정하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질서만을 강조할 일은 아니다.
'아전인수'는 국민 분노 불러
이번 불행을 여과 없이 정치적으로 해석하려는 일부 정치인들을 보면서 진중함의 부족을 느낀다. 정치인들은 총체적으로 국민에게 사죄하는 자세를 보여야 한다. 가뜩이나 삶이 팍팍한 국민의 마음에 이처럼 큰 부담을 준 것에 대해 다 함께 죄인처럼 느끼는 양심을 가져야 한다. 여기에 여야가 따로
일 수 없다. 또 다시 지겹게도 내편, 네 편을 나누고 국가적 불행을 아전인수격으로 해석하려 한다면 국민들은 그야말로 자제할 수 없는 분노를 보일 것이다.
이현우 서강대 정외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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