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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61> 미국의 시와 주 연방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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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첫 美연방 하원의원 김창준의 숨겨진 정치 이야기] <61> 미국의 시와 주 연방 제도

입력
2009.05.26 23: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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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사실 미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되었을 때만 해도 정치에 별로 경험이 없는 초년생이었다. 시 의원과 시장을 지냈지만 이 직책은 특정 지역을 대표하는 지도자일 뿐 정치인으로 보기는 힘들다.

미국의 도시들에는 두 가지 형태의 시장과 시 의원 제도가 있다. 인구 100만 명이 넘는 로스앤젤레스, 시카고, 휴스턴, 뉴욕과 같은 대도시는 시 의원 수가 대개 50명 안팎이며, 이들은 자기 지역구에서 출마한 해당 지역의 대표들이다. 시장은 지역구를 초월해 도시 전체에서 한 사람을 뽑는다.

시장은 시 의원들이 간접선거로 뽑거나 시 의원 중 가장 많은 득표를 한 사람이 되며, 아예 시장에 따로 출마하는 경우도 있다. 물론 도시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대개는 이 세 종류다.

이들은 거의 자원봉사자로 무보수로 일하거나 약간의 판공비 (한 달에 2,000~3,000 달러)를 받는다. 그래서 시장이나 시 의원은 대부분 자기 시간을 활용할 수 있는 자영업자나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는, 그 지역 유명 터줏대감들이다.

나도 시장 재직 시 아침마다 8시30분에서 9시30분까지 1 시간 정도 시청에 들러 업무를 보고는 내가 운영하는 토목설계회사에 급히 달려가야 했다. 시 의회는 주로 매주 한 차례 저녁 7시부터 개최하는데 어떤 때는 새벽2시까지 할 때도 있었다. 의회 회의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지역의 케이블 TV로 생중계한다. 어떤 날은 수백 명이 참관할 때가 있다.

그 중에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한번도 빠지지 않고 일찌감치 나와 가장 앞줄에 앉아 있는 주민들이 5,6명 정도 된다. 이들은 항상 시비를 걸면서 시장인 나와 다른 동료 시 의원들을 공격하기가 일쑤다. 취미로 하는지는 몰라도 사사건건 반대하고 트집이다.

이들이 오지 않았으면 하는 생각에 직원에게 물어보면 벌써 30분 전부터 맨 앞에 앉아 있는데 뭔가 화가 나 있는 것 같다는 보고다. 그럴 때면 가슴이 덜컥한다. 이들은 어느 시에나 존재하는데 흔히 '귀찮은 쇠파리' (Gadfly)로 불린다. 시장이나 시 의원은 소속 정당을 밝힐 필요는 없지만 대개는 자기가 소속돼 있는 정당을 밝힌다. 하지만 선거 때는 물론, 당 공천제도도 없고 당의 도움도 없이 혼자 뛰어야 한다.

시장이나 시 의원을 거쳐 그 지역에서 인지도가 높아지면 주 하원 또는 상원에 도전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주 의원이 되려면 예비선거를 거쳐 소속 정당의 공천 과정을 거쳐야 하는 등 그야말로 정당 정치가 시작된다. 정치인이라고 하면 통상 이런 사람들을 지칭하는 것인데, 주마다 주지사 (Governor) 가 있고, 부지사, 주 하원의장이 있다.

주 의원은 반드시 그 주 안에 지역구가 있어야 하며 전국구란 것은 없다. 주 상하원 제도는 주마다 약간 다르지만 캘리포니아의 경우 하원의원은 80명, 주 상원의원은 하원의원 지역구 2개를 합쳐서 지역구가 형성되기 때문에 40명이다. 임기는 하원의원의 경우 2년씩 3선 이상 못하며, 상원의원은 4년씩 2선 이상 하지 못하게 되어 있다.

캘리포니아, 텍사스, 뉴욕 같은 큰 주들은 이들 주 의원들이 모두 풀타임으로 근무, 적지않은 봉급을 받는다. 하지만 그 밖의 작은 주들은 일종의 자원봉사직이다. 주 의회는 매일 열리는 게 아니라 1년에 몇 차례 열리는 게 고작이고, 특히 예산 통과 같은 경우를 빼고는 만나는 횟수가 별로 많지 않다.

주 정부는 연방 정부같이 주민으로부터 소득세를 걷고 판매세 (Sales Tax), 휘발유세 등 일부를 걷어 운영하는데 늘 야당의 반대 때문에 예산 통과가 순탄치 않다.

흥미로운 것은 캘리포니아 주의 경우 주지사와 부지사가 런닝메이트로 출마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 독립적으로 소속당에서 예비선거를 거쳐 공천을 받아 출마하는 것이다. 그렇게 때문에 당선된 주지사와 부지사가 다른 당일 수도 있다.

이런 경우 주지사는 부지사의 눈치를 항상 봐야 하고 또 부지사는 간부회의에서 거침없이 쓴 소리를 하기 때문에 '얼굴 마담' 국무총리 제도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욱 효과적이라고 볼 수 있다. 그래서 주지사는 혼자 자리를 비우고 해외여행 가는 것을 꺼린다.

그 이유는 주지사가 해외여행으로 며칠씩 자리를 비우게 되면, 부지사가 그 동안 밀린 법안들을 대신 서명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내 각 주의 정치는 연방 정부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주 의회는 그 주에 관한 안건만을 처리한다는 점에서 연방과 현저히 다르다.

그래서 대개의 정치 행로를 보면, 주 의원을 몇 년 걸쳐 충분한 정치적 경험을 얻은 뒤 연방 의회로 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니 연방 의회에 가보면 주 의회 출신들이 많다. 이들은 정치 경험이 충분해 연방 의회에서도 서슴지 않고 활동을 개시한다.

내 경우는 시 의회 의원과 시장을 지낸 뒤 주 의회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연방 의원으로 간 사례로 나는 지금도 이를 후회하고 있다. 정치 초년생으로, 백인 정당으로 알려져 있는 공화당의 유일한 아태계 출신으로, 백인 지역구에서 유명했던 정치 베테랑인 백인 주 상원의원을 물리치고 당선되었으니 나의 의정생활이 얼마나 고달 펐는지 독자들이 충분히 상상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한인 계통의 정치권 진출은 미약하기 짝이 없다. 주 의원은 현재 워싱턴 주의 폴 신 의원 한 명 뿐이다. 신 의원은 고아 출신으로, 미국에서 입양아로 자라난 우리의 자랑스러운 주 의원이다. 한인들의 정치 진출이 대서특필로 보도되기도 하지만 대개 시 의원이나 시장이다. 이들이 모두 주 의회를 거쳐 연방 의회에 진출하기를 바란다.

미국 의회에는 아직 내 뒤를 이은 연방 의원이 없지만 앞으로 시간 문제일 것이다. 한반도라는 조그마한 땅에서 올림픽 야구에서부터 수영, 피겨 스케이트, 골프 등 예전엔 꿈도 꾸지 못했던 스포츠의 천재들이 나왔다. 이들이 과거에는 상상도 힘들었던 꿈을 현실로 이뤄 놓은 것이다. 그러니 머지않아 미국에서도 내 뒤를 이을 연방 의원이 나올 것을 굳게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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