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핵심 관계자는 그동안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전면 참여 여부에 대해 "칼은 칼집에 있을 때 힘을 발휘한다"고 말해 왔다. 'PSI 참여 확대 원칙은 확고하나 가입 시점은 북한의 태도에 달려 있다'는 의미였다. 하지만 거듭되는 경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25일 2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정부는 이에 따라 26일 북한 핵실험에 대한 보복 조치로 칼집 속 칼인 PSI를 빼 들었다.
정부의 PSI 전면 참여 방침은 예상된 수순이었다. 이명박 정부는 대통령직인수위 시절부터 PSI 가입 입장을 밝혀 왔다. 특히 지난달 5일 북한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 PSI 참여 발표를 계획했으나 개성공단 현대아산 직원 억류 문제와 겹치면서 시기를 놓쳤다. 이후 남북 간 대화 움직임이 재개되면서 PSI 가입은 물 건너가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북한이 예상보다 빨리 핵실험을 실시하면서 죽은 줄 알았던 PSI가 다시 살아났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이 우리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핵실험을 강행했는데 가만 손 놓고 있을 수는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 관계가 단절되면서 현실적으로 북한을 응징할 수단이 없는 만큼 PSI라는 상징적 조치로 이를 대신하겠다는 의도로 읽힌다.
PSI 참여는 또 한미동맹을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은 취임 이전부터 PSI 제도화, 즉 국제기구화에 깊은 관심을 보여 왔다. PSI를 핵테러리즘 대응의 핵심 수단으로 보는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등도 계획하고 있다. 정부로서는 PSI 가입으로 WMD 확산 방지 대열 동참이라는 대의와 함께 한미동맹 강화라는 일거양득 효과를 노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PSI는 북한만 위협하는 게 아니라 우리에게도 위험한 '양날의 칼'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당장 예상되는 북한의 반발이 걱정이다. 북한은 그동안 남한의 PSI 참여 움직임에 대해 "(우리에 대한) 선전포고이고, 즉시 단호한 대응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혀 왔다. 인민군 총참모부도 지난달 18일 "서울이 군사분계선으로부터 불과 50㎞ 안팎에 있다는 것을 순간도 잊지 말아야 한다"고 경고했다.
북한이 PSI를 꼬투리 잡아 서해 북방한계선(NLL)이나 비무장지대에서 무력 도발을 꾀할 수도 있고, 2005년 8월부터 발효 중인 남북해운합의서 파기 입장을 밝힐 수도 있다. 개성공단 억류 직원 문제가 장기화하고, 공단 폐쇄의 빌미를 줄 우려도 있다.
이 때문에 정부는 "PSI는 북한만을 겨냥한 조치가 아니다. 남북 관계와 직접 관련 있는 사안이 아니다. 북한이 이런 차원에서 잘못된 인식을 하지 않기를 기대한다"(이종주 통일부 부대변인)고 북한 달래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정부가 이날 PSI 가입 방침을 밝히면서 "남북간 합의된 남북해운합의서는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고 한 줄 덧붙인 것도 북한을 자극하지 않겠다는 의미다.
하지만 야당을 중심으로 "PSI 참여는 실익이 없는 감정적 대응일 뿐"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등 남남갈등 가능성도 커지는 상황이다.
정상원 기자 ornot@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