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음식점에서 짜장면, 짬뽕을 모두 먹고 싶었는데 짬뽕만 먹었다면 짬뽕에 대한 기회비용은 얼마일까."
지난 22일 오후 경기 용인시 처인구 '선한 사마리아 보육원' 강당. 제1회 Ecolish 경제 퀴즈 대회에 참가한 60명의 초ㆍ중학교 보육원생들이 열심히 문제를 풀고 있었다. 지난 1년간 '고등학생 선생님'에게서 배운 경제 지식을 총 정리하는 시간이었다.
학생들은 문제가 잘 안 풀리는지 끙끙대다가 한숨을 내쉬기도 하고 더러는 연필을 굴려 객관식 문제의 답을 찍는 모습도 보였다. 강민(13)군은 "퀴즈 잘 풀려고 5시간이나 공부하고 교재도 세 번이나 읽었는데 문제가 너무 어려워요"라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어진 시상식에서 1등을 차지한 초등부 김정규(12)군, 중등부 현지우(14)군에게 트로피와 7만원짜리 문화상품권이 수여됐다. 부문별 2, 3등과 참가자들에게도 5,000~5만원 상당의 문화상품권이 돌아갔다.
퀴즈를 내고 시험 감독도 한 10명의 고등학생 선생님들은 상품을 포함한 행사 비용 260만원도 직접 발로 뛰어 지역 업체들로부터 협찬을 받아 마련했다.
보육원생들에게 경제를 가르치는 선생님들은 인근 용인외고 봉사동아리 'Ecolish' 회원들. 이들은 2주에 한 번씩 주말에 보육원을 찾아 4시간씩 강의를 하며 용돈 관리법을 일러주고 경제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를 돕는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원래는 영어로 경제를 가르칠 작정으로 동아리 이름도 '경제(Economy)+영어(English)'로 지었지만, 사정이 여의치 않아 영어 강의는 보류했단다.
이들의 인연은 동아리 회장인 2학년 이용준(17)군이 지난해 3월 선한 사마리아 보육원을 찾으면서 시작됐다. 처음엔 통상의 봉사활동만 하던 이군은 보육원생들이 돈에 대한 개념이나 경제 상식이 부족하다는 것에 주목했다.
무엇이든 함께 나눠 갖는 '공동생활'에 익숙해진 탓이었다. 일례로 보육원에서 한 달에 1만2,000원씩 용돈을 주는데, 아이들은 군것질을 하거나 장난감 따위를 사는데 다 써버리고 나중에 후회하기 일쑤였다.
특히 만 20세가 돼 보육원에서 퇴소한 뒤가 문제였다. 퇴소할 때 받는 400만~500만원 가량의 자립 보조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채 휴대폰이나 화장품 등을 구입하는데 탕진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고 한다.
이군은 원생들을 상대로 경제 강의를 시작했다. 강의는 '생활경제'에 초점을 맞춰 자주 쓰이지만 원생들에겐 생소하고 딱딱한 경제 용어에 대한 설명과 구체적인 사례, 세계적 부자들의 경제 활동 등 쉽고 흥미로운 내용으로 꾸몄다. 또 용돈을 어떻게 가치 있게 쓸 수 있을까 등 원생들이 흔히 겪는 경제 상황을 설정하고 자유롭게 토론하는 시간도 가졌다.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 진학을 목표로 한 이군은 경제학 관련 AP(Advanced Placementㆍ대학 과목 선 이수제)를 위해 고교 입학 전부터 경제학을 공부해왔다. 경제 잡지 등도 꾸준히 탐독해 실물경제에 대한 지식도 상당하다.
보육원 김종진 자립담당 교사는 "이군이 어린 나이인데도 경제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다"면서 "사교성도 좋아 원생들이 형처럼 따르며 즐겁게 공부한다"라고 말했다.
경제 강의는 원생들의 생활에 작지만 소중한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쓸 데 없는 것들'을 사느라 용돈을 탕진하는 일이 눈에 띄게 줄었다. 또 경제 공부에 적극적인 관심을 갖는 아이들도 생겼다.
용기백배 한 이군은 지난 3월 학교에 정식 동아리 등록을 하고, 1학년 후배 9명을 선발했다. 지난달에는 후배들과 함께 보육원생 경제교육을 위한 100페이지 분량의 교재용 책자도 발간했다.
보육원측은 무엇보다 원생들이 형, 누나들과 마음을 열고 공부하는 밝은 분위기가 만들어진 것을 값진 성과로 꼽는다. 김인호(12ㆍ초등6)군은 "무지 공부 잘하는 형이 와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경제학 수업'을 한다길래 처음에는 무작정 싫었다"면서 "그런데 형이 경제에 대해 쉽고 재미있게 설명해주고 또 열심히 참가하면 초콜릿, 과자도 주니까 수업이 점점 재미있어졌다"고 말했다.
이군은 "강의를 준비하고 아이들과 함께 공부하면서 개인적으로도 기초 경제학을 복습하는 시간이 된다"면서 "많은 보육원생들이 생활 경제에 대한 기초 지식을 얻을 수 있도록 Ecolish의 활동 모델을 전국적으로 확산시키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대학 입시를 앞둔 처지라 활동에 어려움이 많다. 부회장을 맡은 1학년 고혜진(16)양은 "실제로 봉사 동아리들이 의욕적으로 활동하다 시간이 흐르면서 흐지부지 되는 경우가 많았다"면서 "회원들이 합심해 오랜 전통을 가진 동아리로 발전시켜 나가겠다"고 다짐했다.
강주형 기자 cubie@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