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설식당 그늘 늙은 개가 하는 일은
온종일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를 듣는 일
턱까지 땅에 대고 엎드려 가만히 듣고
심심한 듯 벌렁 드러누워 멀뚱멀뚱 듣는다
곡조의 애잔함 부스스 빠진 털에 다 배었다
희끗한 촉모 몇 올까지 마냥 젖었다
진작 목줄에서 놓여났지만, 어슬렁거릴 힘마저 없다
눈꼽 낀 눈자위 그렁그렁, 가을저수지 같다
별다른 할 일 없는 주인아저씨의 일이란
줄기차게 카세트테이프를 틀어대는 일
한결같은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 리바이벌
정작, 노래를 틀어대는 주인아저씨보다
곡조의 처연함 제 몸으로 다 받아들인 늙은 개가
저 여가수의 노래를 더 사랑할 수밖에 없겠다
뼛속까지 사무친다는 게 저런 것이다
저 개는 다음 어느 생에선가 필시 가수로 거듭날 게다
노래가 한 생애를 수술바늘처럼 꿰뚫었다
● 가설식당 그늘에 엎드려 유행가를 듣는 개. 그것도 최신 히트가 아니라 '무명 여가수의 흘러간 유행가 리바이벌'을 듣고 있는 개. 이 시를 읽으면서 내가 제일 궁금했던 것은 시인은 이 광경을 어디에서 보고 있었을까, 하는 것이다.
지나가면서, 아니면 가설식당에서 밥을 먹으면서? 가설식당에서 밥을 먹고 있었다면 그 밥은 어떤 밥이었을까. 어떤 밥을 먹고 있었기에 흘러간 유행가를 듣고 있는 개가 눈에 뜨인 것일까.
밥을 벌기 위한 고역이 무겁다면 그 밥을 넘기며 듣는 노래는 사무친 법, 그리고 그 노래는 원더걸즈나 비나 효리의 노래가 아니라 무명 여가수가 리바이벌한 옛노래. 사무치고 사무친 그 노래를 들으면서,
시인은 가설식당의 밥을 넘기며 개의 후생을 점친다. 노래에 한 생애를 탕진한 어떤 존재의 후생을. 저 개가 환생해서 가수가 되는 순간…, 아무리 초라한 생이라도 저리 애잔한 것을….
허수경ㆍ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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