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권은 25일 여야 구분 없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를 애도하는 분위기를 시종 일관 유지했다. 각종 정치일정이 모두 취소됐고 국회 의사당 외벽에는 근조 현수막이 걸렸다. 추모 기간 만큼은 서로를 헐뜯고 공격하는 구태를 보여선 안 된다는 공감대가 흘렀다. 그동안 소원했던 관계나 정치적 악연도 추모의 열기 속에 자연스럽게 용해되는 분위기이다.
민주당 정세균 대표가 노무현 전 대통령의 '상주'역을 자임하고 나섰다. 민주당은 그간 대선 총선 패배와 박연차 사건 검찰 수사를 거치며 노 전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분위기였으나 그의 서거를 계기로 빠르게 화학적 결집이 이뤄지는 양상이다. 노 전 대통령 서거 이후 분출하는 참여정부 재조명 움직임에 자극받은 측면이 없지 않다.
정 대표는 23일 서거 소식을 듣자마자 전국 시ㆍ도당사에 분향소를 차려 이번 상은 민주당이 주도해 치를 것임을 분명히 했다.
그는 서거 당일 봉하마을로 내려가 밤을 새며 노 전 대통령 아들 건호씨와 함께 직접 조문객을 맞았고, 노 전 대통령의 장례가 국민장으로 치러지는 것으로 결정되자 25일부턴 서울역 광장에 차려진 정부 공식 분향소에 머물며 사실상 상주 역할을 하고 있다.
그는 또 이날 오후 영등포당사 분향소를 조문한 국회 헌정회 대표단을 맞이하기 위해 영등포로 발길을 돌렸다가 다시 시민분향소가 차려진 덕수궁 대한문에 들리는 등 분주한 하루를 보냈다.
25일 아침 당 최고위원회의를 서울역에서 연 것도 민주당의 상주 지위를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는 회의 직후 기자들과 만나 "할 말은 많지만 지금은 말할 때가 아니다.
평화적 장례가 되도록 하는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고인을 지키지 못한 상주는 말을 삼가야 한다'는 장례 예절을 엄수하겠다는 의지이다. 민주당은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의 시민 추모를 경찰이 막고 있는 데 대해서도 연일 정부에 항의하고 있다.
노영민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보복의 칼날이 당신의 밑바닥까지 파헤쳐 만신창이를 만들고 급기야 당신을 죽음으로 내모는 상황에서도 우리는 그저 어쩌지 못하고 있었던 죄인"이라며 진한 회한을 표명했다.
검찰 수사가 한창일 때 "여든, 야든 한 점 의혹 없이 수사해야 한다"며 거리를 뒀던 것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이다. 정 대표도 이날 "평소 노 전 대통령이 강조한 정치개혁, 지역주의 타파, 국민통합 등 유지를 잘 받들어 계승ㆍ발전시켜야 하지 않겠느냐"며 노 전 대통령 껴안기에 나설 것임을 강하게 시사했다.
당내에선 정 대표의 자제령에도 불구하고 '현 정부 책임론'을 친노 진영에만 맡겨둘 것이 아니라 당 차원에서 제기해야 한다는 강경론도 비등하다.
송영길 최고위원이 이날 라디오에 출연, "이명박 대통령의 공개사과가 필요하다. 도의적으로든, 정치적으로든 책임져야 한다"고 발언한 게 이런 기류를 반영한다. 박지원 의원도 노 전 대통령 서거가 미칠 영향에 대해 "민주당에 더욱 강력하고 선명한 투쟁을 요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영화 기자 yaa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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