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는 말이 있다. 인디 밴드 타바코 쥬스의 멤버 권기욱이 한 다큐멘터리에서 "열심히 안 하면 안 된다. 그런데 우린 열심히 안 한다. 그래서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고 말한 데서 시작된 이 말은 다양한 패러디를 거쳐 인터넷의 유행어가 됐다.
이 말이 왜 유행하게 됐는지는 잘 모르겠다. 다만, 지난 주말 나는 한 명의 대배우와 한 명의 전 대통령의 죽음을 접하며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를 되뇌었다.
여운계는 내가 태어날 때 이미 TV에서 연기를 하고 있었고, 내가 자라면서 봤던 수많은 드라마에 출연했었다. 그는 내가 TV를 틀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사람이었고, 반대로 나의 성장사를 모두 알 것만 같았던 사람이었다.
반면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0년대의 상징이었다. 그는 계파 정치와 지역 감정 대신 인터넷을 통한 디지털 민주주의의 힘으로 대통령이 됐고, 같은 해 한국 국가대표 축구팀은 학연 지연을 초월한 히딩크의 리더십 아래 4강에 진출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을 적극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았고, 그에 대한 공과 역시 각자 판단할 일이다.
그러나, 그의 대통령 당선이 2000년대 한국의 분기점이 됐던 것은 분명하다. 내게 여운계가 나의 성장과 함께 했던 과거였다면, 노무현은 동의하든 동의하지 않든 2000년대 한국의 변화를 이끌었던 미래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가 공유하는 과거를 잃어버린 그 다음 날, 미래까지 잃어버렸다. 물론 누구나 언젠가는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과거가 사라질수록 미래가 다가오는 것도 당연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는 과거는 사라졌고, 미래는 오지 않았으며, 절망적인 현재 속에서 허우적거린다.
평생 함께 할 것 같았던 배우는 세상을 떠났고, 숭례문은 불에 타 사라졌다. 반면 '88만원 세대'로 대표되는 청년 실업과 사회 양극화 문제는 해결 기미조차 보이지 않고, 지난 주말에는 신종 인플루엔자 감염자가 발견됐다.
두 사람의 죽음은 지금 우리가 과거를 잃어버린 채, 미래는 오지 않은 진공 상태에 빠졌음을 보여주는 메시지는 아닐까. 돌아갈 과거도, 기대할 미래도 없다는 이 절망과 공포는 앞으로 우리에게 어떤 상처로 남을지.
지금은 그저 "우린 안 될 거야, 아마"라고 자조할 여유나마 가질 수 있다면 다행일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기어이, 안 될 줄 알면서도 끝까지 살아 남으면서.
대중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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