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덕분에 키가 10㎝나 자란 아이가 있다. 키뿐이랴. 생명이 연장됐고, 자신감도 세상에 대한 애정도 커졌다. 올해 3월 에티오피아에서 날아온 아비 아사미뉴(15). 그는 서울에서 두 번째 수술을 받았다.
삼일회계법인은 2007년에 이어 이번에도 아비의 체류 및 기타경비 일체를 지원했다. 아비는 수술을 잘 마무리하고, 동물원 구경 등 즐거운 한때를 보낸 뒤 지난달 말 돌아갔다. 지금쯤 한국을 몹시 그리워하고 있을 아비의 사연을 편지 형식으로 엮었다.
TO. 저에게 새 삶을 선물한 한국의 모든 분들
와! 드디어 봤어요. TV나 책에만 있는 줄 알았던 아기 사자를 직접 껴안기도 했다니까요. 난생 처음 느껴본 그 촉감이란…. 제가 "암바사(에티오피아어로 '사자'), 암바사" 했더니, 서울대공원 사육사 아저씨는 녀석의 이름을 그리 부를까 생각해본대요. 돌고래 쇼는 또 얼마나 신기하던지요. 친구들한테 자랑거리가 생겼어요.
그 애들은 늘 저를 놀리기만 했어요. '옥시즌 샤카 말리'(산소탱크를 지고 다니는)라고…. 어른들은 '저주 받은 아이'라고 손가락질했지요. 제 등이 꼽추처럼 불룩 튀어나왔거든요. 척추측만증으로 어깨와 등이 타 들어가는, 숨이 막혀 서지도 앉지도 눕지도 못하는 고통을 사람들이 알 턱이 없지요.
많이 속상했답니다. "왜 저를 이렇게 낳았어요"라고 투정을 부리면, 엄마는 몰래 눈물을 흘렸답니다. 그래도 엄마는 씩씩해요. 다른 부모는 장애아를 집안에 숨기고 밖에 못 나가게 하는데, 엄마는 학교도 보내주고 저를 늘 자랑스러워 하니까요. 그 덕일까요. 저에게 기적이 일어났어요. 궁금하시죠? 차근차근 들려드릴게요.
우리 집은 가난해요. 행운이나 기적은 늘 우리 가족을 비껴갔죠. 몸서리치는 불운만이 친구였답니다. 아빠는 제가 태어난 지 얼마 안돼 결핵으로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사탕수수를 팔아요. 하루벌이가 500원인데 그나마 돈을 손에 쥐는 날은 가물에 콩 나듯 해요. 누나가 농장 노동으로 매달 1만5,000원을 받지만, 에티오피아의 최저생계비(3만원)에도 못 미친대요.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아요. 고기를 먹는다는 건 상상도 할 수 없어요. 그래서 가장 먼저 배운 한국말이 '고기'랍니다. 정말 맛있어요. 삼일회계법인 아저씨들 덕분에 실컷 먹었답니다. 감사합니다.
엄마 누나 형 그리고 저, 네 식구는 4평 남짓 방 한 칸짜리 흙 집에 살아요. 화장실도 없고, 부엌도 없고, 수도나 전기도 없어요. 그러니 제 치료는 엄두도 내지 못했죠. 엄마는 제가 갓난아기였을 때, 침대에서 머리부터 떨어져 장애가 생겼다고 믿어요. 당시 엄마는 일하러 나갔었고, 돈이 없어서 제대로 된 치료도 못 했대요.
가난이 죄일까요? 자라면서 척추가 이상하게 휘더니 참을 수 없는 통증이 찾아왔어요. 이런 말 하면 안되지만, '정말 죽고 싶을 정도'로 아팠답니다. 잠도 옆으로만 자야 했어요. 일곱 살 때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병원에 갔는데, 외국에서 대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했대요. 잘못하면 제가 죽을 수도 있다면서…. 겨우 얻은 진통제도 고통을 줄여주지는 못했답니다.
그래도 꾹 참고 왕복 3시간이 걸리는 학교를 열심히 다녔어요. 수업이 길어지면 어깨와 목이 타 들어갈 것 같고, 아이들이 제아무리 조롱해도 남들처럼 살고 싶었거든요. 저도 세상에 나온 이유가 있을 테니까요.
휴~ 사실은 솔직히 힘에 부쳤답니다. 너무 아파서 자주 결석을 할 수밖에 없었고, 친구들과 어울려 좋아하는 축구를 할 수도 없었으니까요.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플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장애를 비관해 자살하는 또래도 있었지만, 저는 그러고싶지 않아요. 왜냐하면 남들에겐 없는 능력이 있으니까요!
혹 지금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나요, 하하. 저의 재능은 바로 '누구보다 아픈 이들의 고통을 잘 안다'는 거죠. 저처럼 고통 받는 아이들을 제대로 치료해줄 자신이 있답니다. 그래서 의사가 되는 꿈을 간직하고 있어요. 꿈을 떠올리면 아픔을 조금이나마 참을 수 있으니까요.
그런데 참 신기하죠. 꿈을 잃지 않았더니 저에게 희망이 찾아왔어요. 13세 때(2007년) 저는 16시간이나 걸려 생전 처음 한국에 왔답니다. 한국 봉사단체 굿네이버스의 '지구촌 희망 원정대'가 저를 발견하고, 영동세브란스병원 의사 선생님들이 치료해 줬지요. 삼일회계법인은 모든 체류비용을 지원해주고요.
척추 마디마디에 쇠를 박고 척추를 곧게 펴는 두 차례의 대수술(후방교정술 및 고정술)을 받은 뒤 기적이 일어났죠. 180도 휘었던 등이 펴지고, 키가 10㎝나 자란 거에요. 숨 쉴 수 있는 공간이 늘어나 답답함도 사라졌고요. 다시 태어난 기분이었답니다. 사실 저는 장애 악화와 불량한 영양상태 때문에 2009讐?숨질 운명이었거든요.
정말 놀랍죠? 사랑의 힘은 정말 세요. 그런데 에티오피아에서 열심히 공부하고 있어야 할 제가 왜 2년이나 지난 2009년, 다시 한국에 왔냐고요? 변치 않은 여러분의 사랑 덕분이죠.
실은 2007년 수술 뒤에 의사 선생님은 "약 2년 후 재수술이 필요하다"고 진단하셨거든요. 아니나 다를까. 척추를 받치고 있던 금속보조물의 볼트 하나가 느슨해져서 제자리로 옮기는 수술이 필요했던 거죠. 수술은 잘 마쳤고, 앞으로 관리(1년마다 엑스레이 촬영)만 잘 하면 된대요.
첫 수술만 해도 감사한데, 삼일회계법인은 다시 한번 저에게 한국 체류비용을 선물하셨답니다. 2차 수술비를 모아주신 이름 모를 후원자 분들께도 이 자리를 빌어 다시 감사 드립니다. 무엇보다 삼일회계법인이 아니었다면 평생 소원이었던 동물원 구경은 한참 뒤로 미뤄졌을 거에요. 그날의 추억은 고이고이 간직하겠습니다.
아 참, 한국에 있는 동안 제 수발 드느라 고생하신 숙명여대 아프리카봉사단 LAMP(Love of Africa Movement Project) 누나들(14명)에게도 고맙다는 말 전해요. 불고기 맛은 정말 최고였어요.
하나 약속할게요. 사실 통증 때문에 성적이 신통치 않았는데, 이제부터 공부 열심히 해서 꼭 의사가 될 거랍니다. 무엇보다 한국에서 받은 사랑은 제 심장을 평생 뜨겁게 뛰게 할 거에요. 사랑합니다, 여러분!!!
- 2009년 5월에 한국의 봄을 소중히 간직한 아비 아사미뉴 드림
PS>하나만 더요. 저처럼 열악한 의료, 환경 문제로 고통 속에 생명이 꺼져가는 지구촌의 아이들을 도우려면 국제구호개발 NGO 굿네이버스(goodneighbors.kr)에 문의(02-6717-4000)하시면 되요. 세상엔 저보다 어렵게 살아가는 친구들이 아직 많답니다.
● 큰 사랑 펼치는 삼일회계법인
삼일회계법인의 사회공헌 영역은 넓고 깊다. 구성원들의 전폭적인 지지 덕분이다.
시작은 미미했다. 2005년 1원 임원들이 월급에서 떼낸 자투리 돈이 씨앗이었다. 그 씨앗이 해를 거듭할수록 풍성하게 자라, 지난해 3월 '삼일미래재단' 설립이라는 커다란 결실을 맺었다.
장기적이고 조직적인 공헌을 하자는 합의와 앞으로 부딪힐 수많은 선택의 순간에 이웃과 맺는 사랑이 올바른 길을 제시하는 기준이 되자는 바람을 담았다.
한국사랑의 집 짓기(가족공동체 회복), 돌팍재농장 돕기(농촌봉사), 사랑의 김장김치 및 연탄 나눔(저소득 가정 지원), 용산 나눔의 집 다문화학교 1일 교사 활동, 화상환자 치료비 지원, 사랑의 도서 기증, 방과후 교실 등 삼일의 나눔은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
지난해 집 짓기 봉사에 나선 삼일사회봉사동호회 김진희씨는 "공명심도, 지위 고하도, 나이도 상관없이 열심히 즐겁게 일하는 자랑스러운 삼일인을 느낄 수 있었다"고 회고했다.
삼일미래재단의 사회공헌은 두개의 바퀴로 굴러간다. 먼저 국내 및 해외 청소년들의 교육과 생활환경 개선. 두 차례나 지속된 아비 아사미뉴에 대한 지원이 대표적이다. 아울러 국내 비영리법인의 회계 투명성 향상에도 힘을 쏟고 있다. 삼일은 비영리법인 대상의 '제1회 삼일투명경영대상'을 올해의 중점 사업으로 잡고 있다.
안경태 삼일회계법인 회장은 "삼일이 성장하기 위해 시작한 사회공헌 덕분에 우리가 나눈 것 이상으로 많은 것을 얻었다"며 "삼일에서 흐르기 시작한 작은 한 방울이 바다를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삼일인들이 이웃과 더불어 흘린 땀은 이미 큰 강이 되고 있다.
고찬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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