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과 검찰 사이의 길고도 질긴 악연은 결국 노 전 대통령 비극적 서거로 막을 내렸다.
첫 충돌은 28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81년 9월 노 전 대통령은 '이적표현물'을 학습했다는 이유로 부산지역 대학생들을 정부 전복집단으로 몰아 기소한 '부림사건'에서 문재인 변호사와 함께 무료 변론을 맡았다.
공안당국은 관련자들을 영장 없이 체포해 최대 63일간 협박과 고문을 가하며 공안사건으로 조작했고, '잘 나가던' 세무 변호사였던 노 전 대통령은 이 사건 이후 인권변호사로서 가시밭길을 걷게 된다.
87년 노 전 대통령은 시위 도중 최루탄에 맞아 사망한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의 사인 규명에 나섰다가 노동법상 '제3자 개입' 혐의로 구속됐다. 당시 검찰은 밤사이 담당 판사와 법원장 집을 찾아 다닌 끝에 결국 노 전 대통령에 대한 구속영장을 발부받은 사실이 나중에 밝혀졌다.
대통령에 당선되고서도 그와 검찰의 불편한 관계는 계속됐다.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과는 달리 검찰에 대한 개입을 자제해 검찰권 독립에 크게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역설적으로 임기 내내 정치적으로 독립한 검찰의 반발 때문에 고초를 겪었다.
그 전부터 검찰 개혁을 염두에 뒀던 노 전 대통령은 검찰총장보다 한참 나이 어린 판사 출신 변호사 강금실씨를 첫 법무장관에 기용하는 파격 인사를 했다. 반발을 무마하기 위해 마련된 '검사와의 대화'에서 평검사들이 대통령의 수사 외압 의혹을 제기하고, 노 전 대통령이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라며 감정적으로 대응하면서 관계는 더 나빠졌다.
취임 첫해인 2003년부터 썬앤문 사건과 장수천 사건, 대선자금 수사 등으로 양측의 긴장은 고조됐다. 현직 대통령이었던 노 전 대통령에게까지 검찰의 칼끝이 미치지는 않았지만, 측근들이 줄줄이 연루돼 구속 수사를 받았다.
2005년 송두율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서도 양측은 대립했다. 천정배 법무부 장관이 초유의 검찰총장 지휘권을 발동해 불구속 수사를 지시했고, 김종빈 검찰총장은 이를 수용한 뒤 즉각 항의성 사표를 냈다.
퇴임 후 긴장 관계는 정점에 달했다. 지난해 노 전 대통령은 국가기록물 유출 사건과 관련해 서울중앙지검 첨단범죄수사부의 수사선상에 올랐고, 고 남상국 전 대우건설 사장 유족들이 노 전 대통령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한 사건도 서울중앙지검에 배당됐다.
결국 올들어 대검 중수부가 국세청 세무조사 자료와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의 진술을 토대로 노 전 대통령을 뇌물 혐의로 수사하면서 28년에 걸친 악연은 돌이킬 수 없는 선을 넘고 말았다.
이영창 기자 anti092@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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