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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죽음의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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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죽음의 뒤

입력
2009.05.25 0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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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박 6년을 키운 '남생이'가 지난달 눈을 감았다. 재래종 남생이가 아니라 하천 생태계의 적으로 자주 지목된 외래종 '붉은 귀 거북'이지만 식구들은 그렇게 불렀다. 산 중턱 바위 위에 돌덩이처럼 앉아 있던 녀석이다. 누가 내다버렸을 녀석이 안 돼 보여 집으로 들고 왔을 때 아내는 영 내키지 않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녀석이 등껍질에 감췄던 머리와 발을 내밀고, 먹이를 받아 먹고, 집안을 헤집듯 돌아다니면서 식구들과 이내 정이 들었다. 먹이고 씻느라 공을 들인 아내와 가장 먼저 친해진 것은 물론이다. 나중에는 말을 알아듣는다고 자랑하며 귀여워했다.

■지난해 봄 겨울잠에서 깨어난 뒤부터 녀석은 완연히 쇠약해졌다. 눈알이 튀어나올 듯했던 눈의 염증은 테라마이신 안연고로 겨우 가라앉힐 수 있었지만, 한번 떨어진 식욕은 좀체 돌아오지 않았다. 오랫동안 마른 멸치나 새우를 물에 불려 먹인 탓인가 싶어, 생고기를 먹여 보았다. 잠시 관심을 보이더니 금세 그 또한 시들해졌다. 올해는 겨울잠이 유난히 길었고, 깨어난 뒤에도 거의 먹지 않았다. 밖에 내놓아도 전처럼 돌아다닐 생각을 하지 않았다. 어느날 아침 녀석은 네 다리와 고개를 길게 뻗은 모습으로 굳어 있었다. 아주 편하고 행복할 때나 보여주던 자세였다.

■창호지로 싸서 아파트 담 옆의 벚나무 아래 묻었다. 아내는 울먹였다. 근처에 마땅한 병원이 없어 제대로 치료하지 못해 후회가 된다고. 특유의 비린내를 지우려고 수시로 화장실 바닥과 벽을 닦느라고 힘들어 무심코 내뱉은 "갖다 버려야지" 하는 말에 '남생이'가 낙담해 생명 에너지를 다 잃었을 거라고. 20년쯤 살았으니 수명을 다한 거라고 한참을 다독거려야 했다. 그런 나도 풀숲이 무성해진 녀석의 '무덤'을 가끔 살핀다. 최선을 다했느냐는 후회가 줄어든 자리를, 그래도 산에 버려두지 않기를 잘했다, 같이 해서 즐거웠다는 생각으로 채운다.

■'남생이'의 죽음은 나눠준 정에 비례해 아내와 나의 마음을 정화시켰다. 죽음이 던지는 슬픔은 살아가는 데 필요한 정서적 에너지의 재충전을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인연의 끈이 떨어져 나갈 때마다 거기 기울인 관심과 애정도 함께 흩어질 뿐이라면 살아남은 사람의 가슴엔 먼지만 풀썩거린다. 산 사람의 가슴을 적셔준다는 점에서 모든 죽음은 저마다의 크기로 대속(代贖)과 정화 기능을 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충격적인 죽음 또한 사람과 세상을 맑게 하길 빈다. 그 여부는 결국 산 사람에게 달렸다.

황영식 논설위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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