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트스코어 3-0. 당시 세계랭킹 2위였던 라파엘 나달(스페인)이 '테니스 황제' 로저 페더러(스위스)를 완벽하게 셧아웃 시키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108분이었다. 6-1 6-3 6-0의 완승. 단 4게임만 따낸 뒤 생애 최악의 패배를 당한 '황제'도 패배를 인정했다.
지난해 6월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결승은 새로운 '테니스 황제'의 즉위식으로 치러졌다. 완벽한 승리를 거둔 나달은 이후 승승장구하며 세계랭킹 1위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1년 전의 악몽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있는 페더러는 나달을 뛰어넘지 못하고 세계랭킹 2위에 머물러 있다.
세계 남자 테니스계를 양분하고 있는 나달과 페더러가 1년 전 세계를 경악케 한 결승전이 펼쳐졌던 바로 그 곳. 프랑스 파리 롤랑가로스에서 다시 맞붙는다. 시즌 두 번째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 테니스대회가 오는 24일부터 6월7일(이하 한국시간)까지 열전에 돌입한다.
1891년 프랑스 국내대회로 시작된 뒤 1925년 국제대회로 격상된 프랑스오픈은 올해로 108회째를 맞는다. 올해 총상금은 1,615만460유로(약 273억원). 지난해보다 3.7% 늘어난 액수다. 남녀 단식 챔피언에게는 106만유로(약 17억9,000만원)의 천문학적인 상금이 수여된다.
이번 대회의 가장 큰 관심사는 역시 '클레이코트의 황제' 라파엘 나달(세계랭킹 1위ㆍ스페인)이 5년 연속 정상을 지킬 수 있을지 여부. 나달이 5연패에 성공할 경우 자신의 4연패 기록은 물론 지난 1978부터 1981년까지 4년 연속 우승을 차지했던 비욘 보리(스웨덴)의 연속 우승 기록을 28년 만에 갈아치우게 된다.
그러나 전망은 밝지 않다. 지난 주 마드리드오픈 준결승에서 무릎부상을 입은 뒤 결승에서 로저 페더러(2위ㆍ스웨스)에 0-2 완패를 당했기 때문이다.
나달은 클레이코트 연승 행진이 33경기에서 끊기면서 페더러에게도 클레이코트 두 번째 패배를 당했다. 메이저대회 중 유일하게 프랑스오픈에서만 우승컵을 들어보지 못한 페더러는 이번 대회를 반드시 제패해 '커리어 그랜드슬램'을 이루겠다는 각오다.
남자부가 나달과 페더러의 2파전인데 반해 여자부는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혼전 양상이다. 지난해 챔피언 아나 이바노비치(세르비아)가 올시즌 부진으로 세계랭킹 8위까지 추락했고, 올해 호주오픈 챔피언 서리나 윌리엄스(2위ㆍ미국)도 최근 4연패를 당했다. '러시안 뷰티' 마리아 샤라포바(126위ㆍ러시아)의 출전 여부도 관건.
한편 한국 테니스의 간판 이형택(143위ㆍ삼성증권)은 손목 통증으로 이번 대회에 불참한다. 이번 대회의 최종 본선 대진은 23일 발표된다.
■ 클레이 코트의 마법
피트 샘프러스(미국)와 로저 페더러(스위스). 두 선수는 세계 남자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로 꼽힌다. 두 '테니스 황제'가 따낸 그랜드슬램만 무려 27개. 그러나 두 선수 모두 프랑스오픈에서는 우승컵을 들어올린 적이 없다.
프랑스오픈은 유일하게 클레이코트에서 열리는 그랜드슬램 대회다. 벽돌을 갈아 만든 롤랑가로의 진한 오렌지색 코트는 샘프러스와 페더러 뿐만 아니라 존 매켄로, 보리스 베커, 슈테판 에드베리 등 전설적인 스타들에게 단 한 번도 우승을 허락하지 않았다.
진흙 코트에 볼이 닿을 때마다 스피드는 줄고 바운드는 높아진다. 강력한 서브를 무기로 하는 선수들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되는 셈이다. 반대로 롤랑가로에서 강세를 보이는 선수들은 하드코트에서 약할 수밖에 없다.
프랑스오픈에서 여섯 차례 우승을 차지한 스웨덴의 전설적인 테니스 스타 비욘 보리는 하드코트에서 열리는 호주오픈과 US오픈에서 단 한 번도 우승을 차지한 적이 없다.
페더러는 나달과의 지난해 프랑스오픈 결승전에서 최고시속 208㎞짜리 광속 서브를 선보였지만 롤랑가로의 진흙바닥은 이를 비웃기라도 하듯 페더러에게 0-3 완패를 선사했다.
반면 클레이코트에서의 플레이에 익숙한 스페인과 아르헨티나 선수들이 이 곳에서 강세를 보이는 것은 놀랄 일이 아니다. 지난 12번의 프랑스오픈 남자단식 결승 중 무려 9차례나 이들이 결승에 올랐다. '클레이코트의 제왕' 나달은 2005년 이후 클레이코트 승률이 96.8%(150승5패)에 이른다.
허재원 기자 hooa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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