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선거구를 이어 받아 일가 대대로 정치인이 되는 세습의원을 당장 올해 중의원 선거 때부터 규제하려는 움직임이 본격화하고 있다. 민주당은 지난달 선거구 상속을 금지하는 내규를 마련했으며, 세습의원 비율이 높은 자민당은 친족의 동일 지역구 출마 제한을 적극 검토 중이다.
일본 언론들은 자민당 당개혁실행본부가 현직 의원의 친족이 같은 선거구에서 이어 출마하려 할 경우 공천을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정치자금단체도 이어받지 못하도록 하는 당 내규 원안을 마련했다고 22일 보도했다. 개혁본부는 향후 세습 금지 친족의 범위를 구체화한 뒤 아소 다로(麻生太郞) 총리에게 보고할 계획이다. 개혁본부 안에서는 이 규제를 다가올 중의원 선거에서 바로 실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 하지만 이 경우 지난해 정계 은퇴를 선언하며 가나가와(神奈川)현 선거구를 차남에게 물려준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전 총리 등 당장 자민당 중의원 2명의 자녀가 출마를 포기하거나 무소속 출마가 불가피하기 때문에 파문이 일고 있다.
당 지도부를 중심으로 세습의원 제한에 소극적이었던 자민당이 돌연 조기 규제로 돌아선 것은 민주당이 지난달 한발 앞서 선거구 상속 금지 방침을 밝혔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국회의원의 친족이 동일 선거구에 연속 입후보하는 것을 금지해 이를 다가올 중의원 총선 공약에 명기키로 했다. 친족의 범위로는 조카 등 3촌까지가 유력하다.
전후 1세대 정치가들이 은퇴를 시작한 1960, 70년대부터 늘어나기 시작한 세습의원은 사실 일본 정치제도의 산물이다. 선거에서 정당보다 훨씬 큰 영향력을 발휘해온 개인후원회가 당선 횟수를 늘려 지역의원을 유력 정치인으로 만든 뒤 이들이 지역에 이익을 가져오도록 하는 구도를 추구했던 것이다. 자민당의 파벌 정치도 이에 적극 호응했고, 그 결과 부동의 위치를 구축한 의원은 자신의 후원회를 통째 친족에게 넘겨 의원직을 물려주기 수월케 됐다.
하지만 1990년대 후반 소선거구로 선거제도가 바뀌면서 정당의 중요성이 커졌고 최근에는 세습정치인의 자질이 도마에 오르면서 규제론이 급부상했다.
자민당 내에서는 "당장 세습 규제를 하지 않으면 선거에서 이길 수 없다"는 여론이 거센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정권을 쥔 아소 총리는 21일 기자들 앞에서 "이제까지 해온 것처럼, 우수 인물을 공모로 뽑으면 되는 것 아니냐"며 규제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시했다. 자민당은 총재인 아소 총리를 비롯해 간사장, 총무회장, 정조회장 등 당 주요 간부와 장관의 60% 이상이 세습의원이다.
도쿄=김범수 특파원 bs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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