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두식 지음/창비 발행ㆍ344쪽ㆍ1만3,000원
판검사, 변호사 등 법조인들을 바라보는 일반인의 시선은 이중적이다. "저 사람들이 소송 당사자들의 지위나 경제력에 휘둘리지 않고 공정하게 재판(수사,변론)을 진행할까?" 하는 불신감도 강하지만, 주위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 한 통 넣을 만한' 법조인 한 명쯤 있어야 안심이 된다는 생각도 공존한다. 한국사회에서 법조인들은 어떤 존재인가?
법과 시민이 따로 노는 현실을 조목조목 비판해 법조계 안팎에 평지풍파를 일으켰던 책 <헌법의 풍경> (2004)의 저자 김두식(42) 경북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이번에는 거대한 성채와 같은 한국 사회 법조계 내부의 풍경을 들여다본다. 헌법의>
그가 이번 책에서 던지는 질문은 다층적이다. "법조계의 부패는 사라졌을까?" "법조계의 부패 자정(自淨)은 불가능한가? "겉으로 화려해 보이는 법조인들의 일상적 고뇌는 무엇일까?" 등등. 지은이는 심층 인터뷰를 통해 문제의 핵심에 다가간다. 인터뷰 대상자는 23명. 판사, 검사, 변호사는 물론 경찰, 변호사 사무실 직원, 시민단체 관계자, 법조 취재기자, 각종 소송경험자는 물론 법조인 전문 '마담뚜'까지 법조계 전반을 망라한다.
검찰 출신의 변호사이자 법학교수인 저자는 풍부한 사례와 날카로운 통찰력으로 법조계의 실상과 법조인들의 속내를 속속들이 파고들어간다. 구속과 불구속을 가르는 신병 처리를 미끼로 경찰, 브로커, 변호사가 결탁해 사건 관련자들의 돈을 뜯어내거나, 실비(室費)라는 명목으로 판사 출신 변호사가 아무렇지도 않게 후배 판사실에 봉투를 놓고 가는 등 구태는 그래도 많이 사라졌다.
그러나 문제는 시민들의 법률서비스 비용을 높이는 메커니즘이 여전히 강고하게 작동한다는 점이다. 수임료의 30%를 떼어가는 브로커들, 브로커들의 몫을 나눠 가지는 각계의 '해결사들', 높은 수임료에도 불구하고 저임금에 시달리는 변호사 사무실 직원들 등 법조계의 치부가 날것으로 파헤쳐진다. "그야말로 각자의 형편에 따라 '해먹을 기회'만 노리는 하이에나가 되고 마는 것"(203쪽)이 현재의 법조 시스템에 대한 김 교수의 진단이다.
발품을 팔아 파헤친 법조계의 어두운 이면에 대한 고발도 생생하지만, 법조인을 '신성가족'으로 명명한 책 제목이 함축하듯 "왜 일반인들에게 법조인(시스템)은 그렇게 먼가?" 하는 문제의식이 책 전체에 살아있다는 점은 각별한 의미가 있다. 저자는 여러 문제의 근인을 법조계 내부의 '의사소통의 부재' 와 함께, 법조인의 인품으로 '원만함'을 중시하는 풍토라고 진단한다.
판사들의 엄청난 업무량, 공급자 위주의 법조인력 양성 시스템, 변호인과 의뢰인 사이에 기생하는 브로커 등은 변호사, 판사, 사건당사자 간의 의사소통의 단절을 야기한다는 것. 또한 한국사회의 다른 많은 분야처럼 법원, 검찰조직의 가부장적 위계질서를 깨뜨리지 않는 원만함을 법조인의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내부 풍토도 청탁과 뇌물이라는 부패의 고리를 끊지 못하도록 한다고 분석한다.
암울한 법조계의 현실을 타개하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저자는 대부분의 인터뷰이들이 이같은 분석에 동의하면서도 "방법이 없다"고 고개를 흔들었다고 전했다. 그렇다면? 저자는 '시민들'에게 희망을 걸었다. 그 첫걸음으로 그는 "판검사에 대한 말 걸기를 시도해보라"고 주문했다.
문제가 생기면 전화 한 통 넣을 사람을 찾기 전에 용기를 내어 법조인들에게 말을 붙여보라는 것이다. "목소리를 높이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법조인들은 절대로 시민들의 권리를 지키기 위해 알아서 나서주지 않는다. 시민들이 두려움의 장막을 걷고 법조계를 향해 말 붙이기를 시작하는 순간, 신성가족은 눈 녹듯 해체될 것이다."
이왕구 기자 fab4@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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